우선 한국 정치는 선거철만 다가오면 정당의 쇄신과 개혁이 당의 '입'을 통해 표면화된다. 그동안 짐짝 취급받던 국민들은 이때만큼은 양반대접을 받게 된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국민을 받드는 쇄신과 개혁을 이루겠다며 모처럼 국민을 국가의 주인으로 모신다. 이어 여야를 막론하고 쇄신의 첫 발걸음은 공천개혁이라며 공천 기준안을 마련, 정치인 모두를 눈치보며 숨죽이게 만든다. 모처럼 정치권이 조용해지는 시기로 여야 모든 정치인이 한몸, 한마음이 될 것처럼 응집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이도 잠시, 곧 당 내부가 벌집 쑤셔놓은 것처럼 시끄러워진다. 이때 반드시 출현하는 것이 낙하산 공천이다. 곧이어 무더기 공천 반발과 무소속 출마가 이어지게 마련이다. 야권은 여기에 하나 더해 늘 '야권연대'를 수학 공식인양 내세운다.
여야 후보들의 공천이 확정되고 난 뒤의 수순은 후보 개인은 물론 중앙당 차원의 선심성 공약이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이번에도 예외없이 총선용 장밋빛 복지공약을 한 보따리씩 쏟아냈다. 새누리당은 2013년부터 5년간 89조원의 재원을 마련해 보육지원과 고교 의무교육, 대학생 등록금 부담 완화, 일자리·서민주거·장애인 지원 등에 쓰겠단다. 민주당도 이에 질세라 무상보육·급식·의료와 반값 등록금 등 '3+1' 무상시리즈에 일자리·주거복지, 취약계층 등을 위해 164조7천억원의 재원을 마련하겠단다. 이런 복지공약대로라면 새누리당은 연간 15조원을, 민주당은 33조원가량의 복지예산을 추가로 마련해야 한다. 이는 올해 우리나라 복지예산(92조6천억원)을 기준으로 16%와 33%를 각각 늘려야 실현가능한 현실이다. 그런데도 양당은 세목신설이나 급격한 증세없이 재원 마련이 가능하다고 하니 정말 전지전능한 정당들이 아닐 수 없다.
본격 선거전으로 들어가면 더욱 예측이 수월해진다. 실현 불가능한 공약 남발은 물론이려니와 불법선거운동 주장, 상대후보 비방·흠집내기, 고소고발 난무 등 진흙탕 선거가 명쾌하게 진행된다. 후보들의 합종연횡으로 어느 후보가 중간에 사퇴했는지도 모른 채 선거전 막바지까지 혼란스러움이 계속되는 것도 예정된 일정이다.
4·11 총선을 20여일 앞두고 우리 정치권은 예외없이 이같은 수순대로 과정을 밟아 왔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로 끝나고 있으니 이처럼 투명하고 예측가능할 수 있겠는가.
황당하게도 마지막 남은 수순은 '유권자 책임론'이다. 국민에게 머리 조아리며 하인처럼 부려달라고 우선 표를 구걸하고는, 자신들이 저질러 놓은 넌더리나는 '진흙탕 선거판', '정치 싸움판'을 변화시켜 나갈 수 있는 것은 '유권자의 힘' 뿐이라며 매번 유권자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거쳐 투표가 끝나고 나면 잠시동안이나마 국민은 다시 주인이 된다. 여야 모두 "국민의 준엄한 뜻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고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어 성패가 갈라진 만큼 승자의 배포 넘치는 아량도 베풀어진다. 고소·고발 취하가 그것이다.
이런 예측가능한 정치판에서 유권자들은 이번 총선 결과에 굳이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4·11 총선이 끝나고 나면 곧 대선이 있기 때문이다. 우후죽순의 정당들이 제각각 대통령 후보를 낸다며 거대 정당들과 거래에 나설 것이고, 대선 후보들의 오르락내리락 하는 지지율에 따라 이 후보와 저 후보, 이당과 저당이 합쳐지고 쪼개질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더 흐르면 정당들은 또 속았다고 외쳐댈 것이다. 노무현정부에 속고, 이명박 정부에 속았다고 말하는 것처럼. 이것이 너무나 가벼운 일회성 정치를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복장터져온, 그래서 너무나 예측가능한 한국정치의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