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대표는 13일 영등포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표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지난 1ㆍ15 전당대회에서 대표에 당선된 이후 89일만이다.
민주당은 이번 주말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과도기 체제'를 정비한 뒤 2개월 내에 전당대회를 신임 지도부를 선출할 계획이다.
◇사퇴 배경..선거 패배 책임 = 한 대표는 지난 1월15일 전당대회에서 압도적인 표 차이로 당대표로 선출됐다. 그러나 지난 3개월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공천과정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았고, 선거 중반 `막말ㆍ저질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킨 김용민 후보 처리를 놓고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선거에서 패배하면서 그의 사퇴는 사실상 예정된 수순이었다. 선거 초반 과반의석(151석 이상)까지 내다봤지만, 과반의석은 물론 원내 제1당까지 새누리당에 내주면서 선택의 여지가 없는 `벼랑끝 상황'으로 내몰렸기 때문이다.
선거 패배 이후 이틀이 지나도록 입장표명이 나오지 않자, 당내에서는 `즉각 사퇴론'과 `선(先) 당정비, 후(後) 사퇴론'이 맞서면서 계파 갈등이 재연될 조짐마저 보였다.
한 대표가 이날 "즉각 사퇴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자신의 거취를 둘러싼 논란이 당내 갈등으로 비화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대표는 회견에서 "지난 4년의 과거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명령, 이명박ㆍ새누리당 정권을 심판하고 민생 국회로 만들어야 한다는 열망을 충분히 이끌어내지 못했다"며 고개를 숙여야 했다.
◇차기 지도부 어떻게 선출되나 = 민주당 당헌ㆍ당규는 대표 사퇴시 2개월 이내에 전국임시대의원회의를 열어 차기 지도부를 선출하도록 돼있다.
차기 지도부 선출 때까지 지난 1ㆍ15 전대 득표 순서에 따라 문성근 최고위원이 대표대행을 맡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박지원 최고위원이 이미 지도부 총사퇴를 주장하고 나선 만큼 최고위원의 대표직 승계 여부도 논란이 될 수 있다.
최고위원들이 대표대행을 하지 않을 경우 김진표 원내대표가 대행을 맡거나 별도로 19대 총선 당선자대회를 열어 대표대행을 선출하는 방안이 논의될 수 있다.
당대표 경선이나 대표대행 선정 과정에서는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친노(친노무현) 진영과 호남을 정치적 기반으로 하는 구(舊)민주계 진영의 치열한 격돌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호남 출신 의원들은 이미 공천과정에서 `구민주계ㆍ호남학살론'을 제기하며 친노 진영에 강력하게 반발한 바 있다.
여기에 당내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시민사회 세력과 한국노총, 이번 총선을 통해 대거 생환한 486 진영이 어떤 스탠스를 취할지도 주목된다.
무엇보다 대권주자들간 경쟁이 조기에 점화될 수 있다. 문재인ㆍ손학규ㆍ정동영ㆍ정세균 상임고문, 김두관 경남지사 등이 치열한 힘겨루기를 벌일 경우 당은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의 격랑 속으로 빠져들 수도 있다.
친노 진영의 지지를 받는 문 상임고문의 경우 총선에서 생환했지만 '낙동강 벨트'의 성적이 저조하다는 점에서 김 경남지사와 부산ㆍ경남(PK) 대표 주자를 놓고 대립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손 상임고문의 경우 친노그룹의 총선 성적이 '절반의 성공'으로 평가되는 반면 자신이 집중적으로 지원한 수도권에서 승리했다는 점에서 향후 행보에도 힘을 받을 것으로 보여 당내 대선주자간 역학구도 변화여부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아울러 당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조기 등판론이 향후 당내 체제 정비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 표출될지도 여전히 주요 관심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