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오전 9시를 조금 넘긴 시간의 서울 강남소재 한 기획부동산. 이곳은 각 부서별로 작업지시를 내리느라 부산한 모습이다. 기자가 속한 담당부서의 K부장은 오늘부터 2차 작업지에 대한 본격 판매에 들어간다며 분발을 강조한다. 앞에 부른 숫자는 작업지의 분할된 평수들로, 오늘부터 236평과 223평 등의 물건을 소화해야한다는 뜻이다.
이번에 작업을 시작한 지역은 충북 제천. 제천산업단지주변에 위치한 이곳은 이미 1차 작업지 6천500여평의 판매가 끝나고 2차로 4천평이 판매에 들어가고 있다.
이어진 아침조회 시간. 지난주말 물건지를 돌아보고 왔다는 C이사는 이번에 판매할 토지가 “지난 12년동안 부동산관련업을 하면서 손에 꼽히는 최상의 물건”이라며 직원들을 독려한다. 아울러 이번에는 '특별 할인가'를 적용한다고 사기를 높인다.
사내 130여명의 TM(텔레마케팅)직원은 주로 30~50대의 주부다. 간혹 남성도 있었으나 이들은 대부분 임원급이고 평직원은 거의 주부들이다. 보통 10여명이 한팀을 이루게 되는데 판매성과에 따라 성과급 외에도 부서별로 값나가는 경품을 걸고 경쟁을 붙인다.
이달에 우리부서는 계약 평수에 따라 금 1돈에서 5냥까지를 지급키로 했다. 즉, 이달말까지 평당 28만원씩 판매하는 물건지 200평의 계약을 완료할 경우, 일명 로열티(성과급)로 평당 4만원씩과 보너스로 금 1돈을 받게 되는 것이다. 월 100만원 내외의 기본급에 성과급을 더하면 적지 않은 금액이다.
첫 출근날 회사에서는 “가능성 있는 대상에 대해 통상 한달에 5번 정도 통화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교육을 했다. 아울러 각 통화회차별 통화요령까지 알려준다. '1차 통화시 너무 많은 정보와 물건지 소개는 가급적 피한다. 2차 통화는 회사에 대한 믿음성을 부각하며 고객예산 및 가계약제도에 대해 반드시 언급을 해준다. 3차는 각종 구체적 상황에 대해 구상한다….' 등등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통화 중 고객이 반응을 보일 경우다. 관심을 보이는 고객은 적극적으로 회사 방문을 유도하고, 이를 통해 친밀감과 신뢰감을 높여 계약으로 연결시킨다는 것이 대강의 스토리다.
본격적인 텔레마케팅 대상은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지역 전화번호부를 보고 무작정 시도하는 것이고, 나머지는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 등에게 전화를 거는 것이다. 두번째는 사실상 다단계나 다름없는 것이다.
전화번호부를 보고 무작위 전화를 시도했으나 몇마디 꺼내기도 전에 전화를 끊었다. 옆자리 직원이 “이런 경우가 다반사”라며 “성과를 내려면 각종 단체나 시설을 이용하면서 친분을 쌓고 이를 계약으로 연결시키는 것이 좋다”고 귀띔을 해준다.
다시 수화기를 잡으려는 순간 ○○사원의 계약금이 입금됐다는 방송이 나오고 해당 부서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온다. 오늘 하룻동안만 벌써 10여건의 계약이 성사됐다. 가계약이 2건이고 나머지는 전계약이다. 가계약이란 일종의 신청금제도를 일컫는데 100만원을 입금하면 해당 물건을 예약해놓게 되며 전계약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우리 부서는 오늘 한건의 실적도 올리지 못해 부서 전체가 침울해졌다. 12명의 부서원중 절반가량이 이틀전 입사한 '햇병아리'였기 때문이다.
“한몫 잡겠다고 여기에 나오지만 그게 쉽지만은 않아요. 퇴직금이고 의료보험이고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물건을 못팔면 아무것도 아니지요. 그래서 요즘은 좋은 물건을 확보한 회사를 찾아 이리저리 옮겨다녀요.”
같은 팀의 아주머니가 요즘 영 실적이 안좋다며 한숨을 내쉰다. 경쟁이 너무 치열해졌기 때문이란다. 결국 '잘나가는' 마케터 외에는 큰 벌이가 없는 셈이다.
부진한 실적을 만회하기 위해 퇴근시간인 오후 5시30분을 훌쩍 넘겨 7시까지 연장근무를 했다. 주부 마케터들은 연장근무가 끝나자 수원·성남·용인·강북 등으로 뿔뿔이 흩어진다. 계약을 올린 이들을 부러워하며 쓸쓸히 돌아서는 이들의 발걸음 뒤로 한때 우리사회를 뒤흔들었던 다단계 판매의 아픈 기억이 환영처럼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세분화된 규모·교묘한 판매수법…피해 속출
부동산 가격 상승의 주범 중 하나인 이른바 '기획부동산'들의 기승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이미 수년전부터 각종 개발정책에 편승하거나 허황된 소문을 퍼뜨려 지가상승을 부추긴 뒤 부당이득을 취해온 이들 기획부동산은 최근들어 그 규모가 더욱 세분화되고 판매수법도 교묘해져 피해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현재 기획부동산들은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퍼져있으나 아직까지 그 수와 규모, 지능화되고 있는 수법 등에 대해서는 제대로 파악조차 힘든 상황이다.
20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기획부동산의 중심지로 알려진 강남의 경우 300여개의 업체가 성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