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구당권파가 강기갑 혁신비상대책위원회에 맞서 또다른 비대위를 출범시키면서 하나의 당에 2개의 비대위가 공존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구당권파인 오병윤·김미희(성남 중원) 당선자와 통합진보당 유선희 전 최고위원은 20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억울한 누명을 벗고 당 명예 회복을 위한 당원 비대위원회가 발족했다"고 밝혔다. 당원비대위 위원장은 오 당선자가, 집행위원장은 유 전 최고위원이, 대변인은 김 당선자가 각각 맡는다.
이들은 이날 "지난 5월 2일 진상조사보고서 발표 이후 불과 20일 사이에 벌어진 당과 당원에 대한 치욕과 파괴상은 참담함 그 자체였다"며 "진실 규명과 당 명예회복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당의 모든 권력이 당원에게 있다는, 진성당원제의 근간과 원칙을 지키기 위해 아낌없는 노력을 다할 것이다"며 "당원비대위는 억울한 당원들을 위한 자발적인 모임이다"고 자신들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들은 이날 구당권파들이 그동안 줄기차게 주장해왔던 '법적, 정치적 정당성이 없는 혁신비대위는 인정할 수 없다'는 내용은 기자회견문에 담지 않았다. 또 통합진보당 사태 정상화의 핵심 사안인 비례대표 사퇴문제와 관련해서도 미묘한 선을 그었다. 오 당선자는 "(비례대표 사퇴문제는) 혁신 비대위가 알아서 할 일이다"며 "(당원비대위는) 사퇴하지 않는 비례대표들을 위한 모임이 아니라 억울한 누명을 쓴 당원들을 위한 모임이다"고 밝혔다.
아울러 당원비대위는 '차기 당지도부 선출과 구성이 완료될 때까지'라고 활동 시기를 못박았다. 김 대변인은 21일부터 국회에서 당원비대위 활동에 대한 일일 브리핑을 할 방침이다. 이때문에 구당권파가 혁신비대위와의 정면 충돌보다는 대국민 여론전 등 고공전을 펼치면서 차기 당 지도부 장악을 통해 재기를 노리는 '버티기' 수순에 본격 돌입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혁신비대위가 21일까지 비례대표직을 자진 사퇴하지 않을 경우 제명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힌 이석기·김재연 비례대표 당선자가 최근 이에 대비해 당적을 서울시당에서 경기도당으로 옮긴 것도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김순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