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을 지나던 여객기의 엔진이 갑자기 꺼지면 어떻게 될까. 통상 엔진이 2개 장착된 여객기의 경우 1개의 엔진이 고장나도 인근 공항에 비상 착륙할 수 있도록 하는 국제항공 규정이 있다. 이것을 ETOPS(쌍발 비행기에 의한 장거리 운항)인증이라고 한다. 고장나지 않은 나머지 엔진 1개로 갈 수 있는 거리와 시간 등을 추정해 항공기가 인근 공항에 비상 착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 인증을 받은 항공기만이 태평양을 건넌다거나 하는 장거리 운항이 가능하다. 그러나 국내 굴지의 항공사인 아시아나항공은 ETOPS인증을 받지않은 여객기를 김해~사이판 노선에 8차례나 투입해오다 국토해양부에 적발됐다. 이 노선은 ETOPS인증이 있는 여객기만을 투입시킬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결국 김해~사이판 노선을 이용한 수백명의 승객들은 비상 착륙할 곳조차 없는 무자격 항공기를 타고 하늘을 날았던 셈이다.
■ 국토부, 국내 항공사 있을 수 없는 일 벌어져
아시아나항공을 조사하고 있는 국토부 관계자들은 이같은 규정 위반 사례는 처음이라며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고 입을 모았다.
항공기 운항 계획을 세우는 항공사 직원들과 운항 전 비행 일정 등을 체크하는 기장과 부기장·정비사 등은 기본적으로 ETOPS인증 여부 등을 확인해야 하는데 이들이 모두 관련 사안을 체크하지 않았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시아나측은 단순 실수며, 고의성이 없었다고 국토부측에 항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두번도 아니고 8차례나 ETOPS 인증을 확인하지 못한 것을 단순 실수로 보기는 어렵다는게 항공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후진국에서도 항공사들이 이런 실수는 하지 않는다"며 "이같은 일이 처음 벌어진 만큼 아시아나측에 강력한 처벌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 국내 항공사들 안전불감증 여전
지난해 국토해양부가 국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2009년부터 3년간 안전기준 위반으로 국내 항공사에 부과된 과징금은 2억6천만원(18건)에 이른다.
2010년 10월에는 대한항공의 한 기장이 혈중 알코올 농도 0.06%인 상태에서 비행기를 조종하려다 적발됐고, 2009년 아시아나항공의 한 비행 교관은 교관 자격이 없는데도 교관 임무를 수행해오다 국토부에 적발됐다. 이밖에 항공기가 활주로가 아닌 유도로에 착륙한 경우도 있었다.
이들 사례는 모두 항공사들의 안전불감증에서 비롯된 사례다.
전직 항공기 조종사 A씨는 "항공사측이 출발시간 지연 등을 우려해 안전규정 등을 소홀히 여기는 경우가 있다"며 "이번 아시아나항공 사례도 안전불감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명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