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 신기한 현상을 전 국민이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 '만사형(兄)통'의 당사자 이상득 전 의원이 검찰의 포토라인 앞에 선 모습을 낯설게 여길 국민은 별로 없을 듯하다.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박영준 전 차관이 법의 심판대에 서면서 이미 많은 사람들이 '다음은 형님 차례겠군' 하고 예견하고 있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등장 인물만 달라졌을 뿐 역대 정권때마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친인척, 측근들이 구속되는 장면을 되풀이해 지켜봤기 때문일 터다. '비리공화국'으로 불렸던 전두환 정권은 차치하고, 문민정부 출범 이후에도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등 역대 정권이 하나같이 똑같은 장면들을 연출해 냈다. 김영삼 전 대통령 때는 '소통령'으로 불렸던 차남 현철씨가 한보 사태에 연루돼 수의를 입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동교동 좌장격인 권노갑씨와 '홍삼 트리오'로 불린 세 아들 가운데 둘이나 구속되는 험악한 꼴을 지켜봐야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재임중 최도술, 이광재, 안희정 등 최측근들이 구속된 데 이어 퇴임후에는 친형과 부인, 아들이 줄줄이 구속 또는 소환되면서 결국 자살이라는 시대적 비극을 초래하기까지 했다. 데자뷰가 없다면 오히려 이상할 노릇이다.
절대권력 주변에서 호가호위하며 잇속을 챙기는 스토리의 전개와 면목없다 가슴아프다 고개숙이는 결말도 항상 비슷비슷했다. 정권 출범 초 너나 할 것 없이 '도덕성'을 절대 선(善)으로 내세웠다는 점도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똑같다. 현 정권은 과거 도덕성을 내세워 집권했던 노무현 정권의 몰락을 대놓고 비아냥거리며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임을 자처해 왔다. 현 정권 실세들의 구속행렬을 핏대 올려가며 공격하고 있는 야권 역시 친인척 비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전 정권의 핵심 세력들이다. 서로 공수만 교대됐을 뿐, 모두 언젠가 어디선가 본 듯한 모습들이다.
이 불쾌한 데자뷰 현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또 하나 있으니, 바로 단죄의 시점이다. 역대 정권의 '친인척 비리사'에서 멀쩡하던 사람이 느닷없이 사법당국의 칼날을 받은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들은 예외없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역겨운 소문의 당사자였다. 소통령이 그랬고, 홍삼트리오가 그랬다. '봉하대군' 노건평씨도 '상왕' 이상득씨도 오로지 자신들만 애써 부정하고 역정을 냈지, 그들의 부적절한 처사는 진작부터 비밀 아닌 비밀이었다. 그런데도 이들은 모두 레임덕이 한창인 정권 말이나 퇴임 직후에야 검찰의 소환대상이 됐고 죗값을 치렀다. 이들이 권력의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뒤늦게 비리에 몸담은 게 아닌데도 말이다. 국민들은 임기말에라도 용케 비리를 포착해 '성역없이' 처벌하는 검찰의 능력에 감탄해야 할지, 아니면 이 빠지고 발톱 빠진 뒤에야 비로소 손을 댄다고 비겁하다 탓해야 할지 헷갈린다.
대통령 친인척 비리를 감시하는 장치나 시스템은 충분하다. 작동이 안 될 뿐이다. 살아있는 권력의 속성이 어떤 것인지 너무도 뻔한데 검찰만 나무라는 것도 분명 무리가 있다. 다만, 대한민국 국민들이 5년 주기로 겪고 있는 이 못된 데자뷰를 끝내는 데 검찰이라도 앞장서 주길 원하는 소심한 바람 정도다. 멋진 풍경,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 느끼는 데자뷰는 신기하고 행복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가 반복되면 트라우마(Trauma)가 된다. 정치가 국민을 트라우마로 몰아넣는 걸 누군가 막아야 한다면, 지금 제일 가까운 건 검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