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가 닥치면 구성원들은 뭉친다. 뭉쳐서 돌파구를 찾다보면 희망의 새싹이 돋아난다. 역사가 이를 말해준다. IMF관리체제 위기 속에서 국민들이 보여준 금모으기 운동이 좋은 예다. 지난달 28일 출범해 200만 시민 서명운동에 돌입한 '인천시 재정위기 비상대책 범시민협의회(이하 범시민협의회)'의 활동에서 인천의 새로운 희망을 본다.

범시민협의회를 구성하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활동노선이 달랐던 보수와 진보를 대변하는 단체들이 한자리에 모여, 한목소리를 내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우여곡절을 거쳐 무려 155개 단체를 한데 뭉치게 했다. 인천의 역사에서 보수와 진보단체가 총망라돼 이렇듯 한마음으로 뭉쳐 공동의 목표를 도모한 일은 유례를 찾기 힘들다.

두 번째는 범시민협의회를 주도하는 세력이 40대 활동가들로 한 세대를 뛰어넘어 젊어졌다는 점이다. 그동안 인천은 현안이 생기면 70대 원로들이 배후에 있고, 50~60대 명망가들이 전면에 나섰다. 그러나 이번에는 40대가 주축이 되고 있으며, 이들은 보수단체와 진보단체의 실질적인 활동가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젊은이들은 예전보다 훨씬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고, 열정적으로 활동하며, 과거 선배들의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세 번째는 진보는 보수단체 활동가를 칭찬하고, 보수는 진보단체 활동가를 칭찬해 주는 분위기가 싹트고 있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호흡이 맞는다고 덕담을 건넨다. 일을 추진하는데 초기의 어려움이 언제 그랬냐는 듯, 각 단체의 허리에 해당하는 활동가들이 전면에 나서 공을 탐하기보다는 일을 하고 있다. 이들은 벌써 다음을 도모할 분위기다. 정부를 상대로 인천항 문제 등 인천 홀대론 현안들에 대해 대응하자는 논의들이다.

정부를 상대로 아시안게임과 도시철도 2호선 지원예산을 상향조정해 줄 것을 요구하기 위해 뭉친 범시민협의회에서 우리는 목표의 성사여부를 떠나 새로운 희망을 본다. 그들이 인천의 새로운 중심으로 부각할 가능성도 읽힌다. 다만 정치인들이 이들의 활동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인천의 희망의 싹을 자르는 행위다. 그동안 단체별로 내부 서명운동을 벌였던 범시민협의회가 오늘부터 거리서명운동에 나선다. 시민들의 관심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