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선 관록의 강창희 국회의장은 요즘 국회에서 터부시 돼 온 오랜 관행을 깨고 있다. 지난 9일 개원 본회의 첫날 의장 통로가 아닌 의원 출입구로 입장해 권위적 관행을 탈피하는 모습을 보였고, 앞으로 국회가 공전되면 직접 여야 원내대표를 찾아가 '소주잔'을 기울여서라도 국회운영이 제대로 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뛰겠다는 소신을 밝혔다. 제64주년 제헌절을 하루 앞둔 16일 국회의장 접견실에서 경인일보 등 9개 한국지방신문협회 회원사와 가진 공동 인터뷰에서 그는 호탕하고 걸걸한 목소리로 요즘 세간에 회자되고 있는 국회와 정치권의 개혁에 대해 시종 소신 있는 답변을 이어나갔다.
■ 제헌의원 192명 생존자 아무도 없으나 그 분들의 덕= 64주년을 맞는 제헌절 의미에 대해 그는 "제헌국회 의원 192명 덕분에 이 정도 번영과 기본적인 삶을 누릴 수 있다. 그 분들의 제헌 정신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된다"고 말문을 열었다.
"현재 제헌국회의원은 한 명의 생존자도 없다"고 소개한 그는 "64년 전 우리나라가 일본 식민지하에서 해방돼 어수선한 상태에서 제헌국회가 열렸고, 그 때 제헌의원들이 경험이 없음에도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만들어 건국하고, 헌법을 만들고, 개헌했다는 것에 경이로움을 느낀다. 이 나라가 이 정도 번영과 기본적인 삶을 누리고 있는 것은 그 분들의 덕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13대 총선에 당선된 후 개원을 못한 전례를 설명하면서 "13대 총선에 당선됐지만 개원이 안돼 제헌행사를 하지 못했다"며 "솔직히 이번에 걱정스러웠는데 국회가 정상화 돼 대단히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대목에서 '국회 개원을 법적으로 강제해야 한다'는 여당 원내대표의 의견에 "동의한다"고 가세했다. 그러면서 "6월5일 개원하게 돼 있는데 지켜지지 않아 현충일, 6·25 행사에 지방자치단체에서도 꽃을 보내는데 국회의장이 빠져서야 되겠느냐"며 "의장과 부의장을 선출하고 개원하는 것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으니 자동적인 국회 개원과 관련한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지난 18대 국회에서 국회선진화법 만들때 추진했어야 했다"며 "제 임기중이라도 국회법을 손 볼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 국회 개점휴업하면 페널티 물어야=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의 체포동의안이 부결된데 대해서는 정치권이 사태파악을 못한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체포 동의안을 부결시킨 것은 새누리당으로서는 좀 잘못 됐다고 본다. 공당이 총선 공약으로 내놓은 사안을 부결시켰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미처 다 생각하지 못한 것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회의원에 대한 200가지의 특권을 내려놓는다는 건, 특권이 그리 많은지 한 번 살펴봐야겠지만…"이라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도 "새누리당이 개원이 늦어져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지키겠다며 세비를 반납한 것은 정확히 국회개원이 늦어진데 대한 대국민사과와 범칙금으로 봐야 할 것"이라며 "앞으로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개점휴업하면 벌금 등 페널티를 주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고질적 관행으로 이어져 온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논란에 대해선 "이제 국회선진화법이 통과돼 천재지변 말고는 직권상정을 하지 못한다"면서 "최소한 몸싸움 없는 국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동안 국회의장의 이미지가 주로 의장실에 앉아 여야 원내대표를 불러 합의하라고 얘기하고 기다리는 식이었다"며 "저는 적극성을 띠고 여야 원내대표를 찾아가서라도 싸우지 말라고 말리기도 하고, 대화해 타협하는데 앞장설 것이다. 웃는 얼굴에 침 못뱉는다. 서로 소주잔을 기울이며 얼굴 맞대는 대면의 기회를 자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 개헌, 선거구 문제는 새정부에서 힘 있게 추진해야= 개헌에 대한 소신 답변도 눈길을 끌었다. 새누리당 출신으로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조언자로 활동한 그는 자신의 이력 때문인지 즉답은 피했지만 새 정부가 들어서면 힘 있게 추진하는게 낫다는 의견을 냈다.
그는 "과거 자민련에 있을때 당론이 의원내각제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새정치국민회의 시절 내각제를 매개로 공동정부를 구성하기도 했다"며 "올해 대통령 선거가 있고, 내년 새 정부가 출범한 후 개헌을 논의하되,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라고 여지를 남겼다.
그는 "지난 18대 국회에서 선거구획정위의 선거구조정안이 반영되지 못한 전례도 이와 흡사하다"며 "선거구개편 및 개헌 문제는 19대 국회 초반, 특히 새정부 대통령 임기 초반일때, 힘 있을때 해야 실현이 가능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 임기내 국회 사무처에 장애인 고용 비율 3% 준수 달성 의지 보여= 그는 이밖에 임기내에 국회 사무처에 장애인 의무고용 비율 3%를 준수하고, 국민들에게 사랑 받는 국회가 되도록 애쓰겠다고 강조했다.
또 자신이 새누리당 출신 의원이라는 점을 의식, 여야간 예민한 사안에 대해서는 답변을 아꼈다.
예를 들어 "'친박계'(친박근혜계) 아니냐"는 질문에는 "'친강'(친강창희를 지칭)이다. 잘못하다 오해가 생긴다(웃음)…"로 즉답을 패해갔고, 친박 중진 모임으로 알려진 '7인중진모임'에 대해서는 "지난 2007년 박 전 위원장을 도왔던 사람들이 안되니 허탈해서 점심이나 돌아가면서 사자고 해서 모인 것"이라며 "우리끼리 모여서 점심먹고 푸념하는 수준이지… 누구한테 건의하고 안을 만들고… 전혀 없다. 너무 침소봉대한 것"이라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정의종기자
■ 강창희 의장은
6선 관록… 첫 충청권 국회의장
박근혜 전 비대위장 조언자 역할
1946년생인 강창희 국회의장은 육사 25기로 중령으로 예편한 뒤 민정당 조직국장을 맡으며 정계에 진출했다. 성격은 JP(김종필 전 국무총리 영문이니셜)가 '스트레이트적 인간'이라고 평가한 것처럼 직접적이고 괄괄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 1983년 37세 나이에 전국구 예비후보를 승계, 11대 국회의원이 되었고, 1985년 총선에서 대전 중구에 출마해 재선에 성공했지만 88년에는 신민주공화당의 JP 바람에 낙선했다.
이후 총 8차례 총선에 출마해 현재 6선 최다선 의원으로 이번에 국회의장에 선출됐다.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과는 지난 2004년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을 추진해 역풍을 맞는 과정에서 강 의장이 박 전 위원장을 찾아가 대표 출마를 강하게 권유하면서 인연을 맺게 된 일화가 유명하다. 2007년 박근혜 대선 캠프 고문으로 활약한데 이어 최근 '7인회 멤버'에 이름을 올려 의장 자격시비도 일었지만 충청권 최초의 국회의장으로 선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