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0일 오후께 치매를 앓고 있던 A(83)씨는 자신의 손녀에게 아들(47)의 '작은마누라'라고 부르며 "훔친 돈을 내놓으라"고 수시간동안 욕설을 퍼부으면서 어김없이 가족들을 괴롭혔다.

A씨의 악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A씨는 치매를 앓기 전인 지난 2002년께 아들의 부인이 "시아버지에게 수 년동안 성폭행 당했다"고 털어놓으며 이혼을 요구해 이들이 갈라서게 만들었고, 이로 인해 충격을 받은 아들 B씨는 한동안 정신과 치료까지 받아야 했다. 치매 증상을 보이던 지난해 말부터 A씨는 가족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매일 욕설과 폭행 등을 일삼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B씨는 아버지를 용서하면서 꿋꿋이 살았다.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자녀 둘을 키우는 것은 물론 주변 형제들이 모시기를 꺼리는 아버지까지 함께 부양해온 것.

하지만 이날 자신의 손녀조차 알아보지 못하고 낯뜨거운 욕설을 퍼붓는 아버지를 본 B씨는 더이상 참을 수 없었다. 순간 격분해 아버지를 넘어뜨리고 주먹과 발로 수십차례 때렸고, 아버지는 결국 늑골 24개가 모두 부러져 숨졌다.

엄청난 실수에 뒤늦은 후회를 한 B씨는 범행 직후 119에 신고했고, 현장에 출동한 구급대원과 경찰들에게 자신의 잘못임을 순순히 인정했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린 법정에서 B씨의 다른 형제들은 모두 '처벌을 원치 않는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B씨의 기막힌 인생이야기를 들은 배심원 9명은 징역 5년에서 집행유예까지 다양한 평결을 내놨으며, 심리를 맡은 수원지법 형사12부(김정운 부장판사)는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존속상해치사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이례적으로 낮은 형량이 부과된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B씨의 범행은 고령의 아버지를 때려 숨지게 한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그러나 아들이 아버지 때문에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고, 가난 속에서도 아버지를 돌보려는 노력을 기울여온 점 등을 고려했다"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

/김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