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이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처음으로 직접 거론했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는 과거사에 대해 역대 경축사보다 강하게 언급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정치ㆍ교육ㆍ사회 문제 등에 대해서는 언급을 줄이고, 지난 임기 4년 반의 성과와 소회를 담았다.
이 대통령 임기 동안 지난 4차례에 걸친 경축사에서는 국정 운영의 비전을 담은'키워드'를 제시했지만 이번에는 보이지 않았다. 임기 6개월을 앞둔 만큼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으로 이를 대신했다.
최금락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은 브리핑에서 "남은 임기 동안 해결돼야 할 과제가 유럽발 경제위기 극복과 양극화 해소"라면서 "이를 위해 총력 대응체제를 구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ㆍ민생엔 임기 없다"..위기극복 의지 밝혀 = 이 대통령의 경축사에 가장많이 등장한 단어는 '경제'로 모두 18번 언급했다. 대부분 글로벌 경제 위기ㆍ침체와 관련된 것으로 이를 극복하겠다는 맥락에서 사용했다.
이 같은 의지는 "정치는 임기가 있지만 경제와 민생은 임기가 없다"라는 문장에 응축돼 있다. 또 "저와 정부는 경제를 살리고 민생을 돌보는 일을 국정의 최우선 순위에 놓고 전력을 쏟을 것"이라고도 다짐했다.
비록 임기 6개월을 남겨둔 정부이지만 우리나라에도 짙게 드리우는 경제 불황의 먹구름을 걷어내려면 한시라도 손을 놓고 있을 수 없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물가안정과 내수진작, 수출ㆍ해외 플랜트 건설 확대와 같은 정부의 대응책을 설명했다.
아울러 국내 경기가 빠르게 얼어붙으면서 청와대에서는 '심장(深長ㆍ깊고 오래감)' 불황이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팽배한 가운데 정치권과 각 경제 주체에도 협력을 촉구했다. 정부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일 수 있다는 것이다.
"유로존이 선제적으로 과감한 조치를 신속히 하지 않는 한 세계 경제 회복은 당초 예상한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도 예외일 수 없다"고 한 부분은 이러한 인식을 반영한 대목이다.
이에 따라 기업에는 투자와 고용을 늘려달라고 하는 동시에 고소득 노동조합의 정치적 파업이 "사회적 공감을 얻기 어렵다"며 자제를 호소했다. 노사 양측에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셈이다.
정치권에는 "기업들이 생산하고 투자하고 고용할 의욕을 높여주는 사회적 환경이 필요하다"고 했다. 대선을 앞두고 '대기업 때리기'가 노골화되는 데 대한 경계심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거론되는 재정 확장 정책이나 추가경정예산 등의 구체적인 대책은 담고 있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日, 위안부 책임있는 조치" 촉구 = 전체 7천685자의 연설문 가운데 일본에 대한 언급은 370자에 불과했다.
그러나 광복절 경축사에서는 처음으로 위안부 문제를 거론함으로써 짧지만 과거에 비해 강도는 오히려 높았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이 대통령은 "양국 차원을 넘어 전시(戰時)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올바른 역사에 반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더욱이 이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는 피해 할머니들이 하나둘씩 사라져 가고 있기때문에 시한이 정해진 문제여서 임기 전 매듭을 풀어야 한다는 의지가 강한 것으로 전해졌다.
보편적 가치를 내세움으로써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양국 간의 문제로 축소하거나 돈을 벌기 위해 자발적으로 했다는 식의 역사왜곡 기도에 일침을 가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다만 독도 영유권 문제는 꺼내 들지 않았다. 최근 역대 대통령으로서 처음 독도를 방문한 뒤여서 어떤 형태로든 언급하지 않겠느냐는 예상을 깬 것이다.
최 수석은 "위안부 문제는 대단히 분명히 말한 것으로써 과거사 문제에 대한 책임있는 조치도 촉구했다"면서 "독도란 단어는 없지만 이미 행동으로 보여줬으므로 경축사에 담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최근 이 대통령의 행보로 충분히 우리의 단호한 입장을 보인 만큼 대내외에 천명하는 공식적인 경축사에서는 자제함으로써 외교적 마찰을 줄이려 한 노력이 엿보인다.
이렇게 과거사 매듭을 풀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그렇다고 여기에만 얽매여 있지는 않겠다는 의중도 내비쳤다.
이 대통령이 "우리도 더 큰 차원에서 이웃나라들과 국제사회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포용하고 협력하겠다"고 한 것은 이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
◇"北, 이제 변화를 모색해야 할 상황" = 이 대통령이 북한에 촉구한 것은 '변화'였다.
이 대통령은 한반도의 비핵화는 반드시 지켜져야 하며 이 경우 적극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는 점을 천명했다. 현 정부가 유지한 '비핵개방 3000'과 맥을 같이하는것이다.
"북한의 변화를 주의 깊게 지켜 볼 것"이라는 부분은 최근 김정은 체제가 시행한 '6ㆍ28 조치'와 관련해 행간에 깔린 의미를 유심히 봐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는 완전배급제를 포기한 징후 아니냐는 시각도 있지만 오히려 생산량을 높여 김일성 시대의 완전배급제로 돌아가려는 조치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북한이 오히려 긍정적인 변화에 역행해 과거로 회귀하는 셈이다.
또 이 대통령이 "한반도의 통일은 이웃 국가들과 국제사회 전체에도 큰 축복이 될 것"이라고 한 것도 함축된 의미가 크다는 게 청와대 핵심 참모의 전언이다.
중국에서는 불안정한 북한보다 통일한국과 접경을 이루는 게 자국 이익에 부합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으며, 지난 5월 한중일 정상회의에서도 이 같은 논의가 있었다고 한다.
즉 이 대통령이 중국 핵심 지도부 사이에 확산하는 인식을 공식적으로 천명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현 정부 대북정책에 대해서는 "그동안 원칙을 지켜 실질적으로 상당한 효과를 내기 시작했다"고 자평하기도 했다.
◇"함께 가야 멀리 간다"..양극화 문제 지적 = 점차 벌어지는 소득격차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통계상의 소득 증가와는 별개로 계층별 실질 소득 수준에 관심을 두고 양극화 문제 해결이 사회 갈등을 없애는 데 첩경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게청와대 참모진의 설명이다.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나온 국정운영의 핵심기조인 '공생발전'이나 2010년 '공정사회'도 이런 차원에서 제시됐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글로벌 경제 위기로 양극화의 골이 깊어지면서 이제 공생발전 없이는 지속가능한 성장도 불가능해지고 있다"면서 "정부는 재정이 허락하는 한 맞춤형 복지를 확대하고, 일자리 창출에 전력을 기울여 왔다"고 밝혔다.
또 학벌 위주 사회의 폐해를 극복하고자 마이스터고와 특성화고를 육성하고, 고졸 채용을 장려하는 등 이른바 '신고졸 시대'를 열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함께 가야 멀리 갈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기업도, 국가도 미래 발전 전략을 삼아야 한다"고 제시했다.
◇"'코리안 루트' 개척해야"..창의성 강조 = 선진일류 국가로 도약하기 위한 핵심 철학으로는 '창의'를 앞세웠다.
이 대통령은 "더이상 남을 따라가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 우리가 앞장서서 길을 열어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대통령은 이를 '코리안 루트'라고 명명했다.
이 대통령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신생 독립국 가운데 유일하게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달성한 우리나라이지만 기존 '따라잡기' 방식은 수명을 다했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한다.
"후발주자일 때의 강점이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한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이 대통령은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창의적 발상이 필요하다"면서 "낡은 것들은 과감히 털어버리고, 지켜나갈 덕목들은 온전히 계승하며 이제까지와는 다른 차원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지난 4년반 성취 회고..대한민국 자긍심 = 이번 광복절 경축사가 임기 중 마지막이라는 점에서 지난 4년반 재임 동안 성취도 회고했다.
특히 2008년 취임하자마자 불어닥친 글로벌 금융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데 대한 자부심을 나타냈다. 당시 대부분 선진국이 금융 위기 이전 GDP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으나 우리나라만 10% 이상 성장했다는 게 이 대통령의 설명이다.
또 세계 경제 최정상회의체인 G20(주요 20개국)을 아시에서 처음 개최하고, 세계핵안보정상회도 서울에서 열어 경제와 안보 분야 질서 구축의 구심점에 섰다는 점을 들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를 설립하는 등 우리 고유의 '녹색성장' 전략으로 글로벌 리더십을 공고히 했다는 자긍심도 나타냈다.
최근 폐막한 2012 런던올림픽에서 세계 5위를 할 만큼 스포츠 강국으로 부상한 것은 우리나라의 불굴의 의지가 일궈낸 자랑스러운 결실이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