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16일 법원으로부터 징역 4년에 벌금 51억원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서울서부지법 형사12부(부장판사· 서경환)는 이날 차명계좌를 만들어 비자금을 조성하고, 차명으로 소유한 위장 계열사의 부채 수천억원을 회사 돈으로 갚은 혐의로 기소된 김 회장을 엄벌에 처했다. 김 회장의 지시를 이행한 한화그룹 핵심 인사 2명에 대해서도 징역형과 벌금을 선고하고 역시 법정구속했다.

매우 이례적인 판결이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1990년 이후 10대그룹 총수 가운데 7명이 모두 22년6개월의 징역형 판결을 받았지만 예외없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고 한다. 그나마 집행유예마저 대부분 사면을 받았는데 사면까지 걸린 시간도 9개월에 불과했다. 따라서 김 회장에 대한 이번 판결은 비록 1심이라 해도 '재벌총수는 집행유예'라는 관행을 깼다는 점에 주목을 받고 있다. 한화그룹이 즉시 항소하겠다고 하니 상급심에서 이같은 기조가 이어질지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될 전망이다.

최근 들어 대기업에 대한 우리 사회의 태도에 큰 변화가 일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정치권에서 불거지고 있는 경제민주화론이다. 여야 없이 재벌을 중심으로 한 성장담론을 벗어던지기에 바쁘다. 대신 재벌들의 순환출자 규제와 금산분리 방안에 이어 출자총액제한제의 부활에 이르기까지 재벌규제 방안을 경쟁적으로 검토 중이다. 이같은 재벌규제 혹은 재벌개혁이 과연 옳은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한창이지만, 이같은 논의의 본질은 이제 더 이상 재벌에 특별한 혜택을 부여하는 세상이 저물고 있다는 점이다. 대기업 집단이 우리 경제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만큼 이제는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국민의식이 정치권의 경제민주화론으로 터져나오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동안 재벌총수들의 불법 행위에 대해 경제에 끼친 공헌을 생각해 관대한 판결을 내리던 법원의 관행도 이제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 세상이 됐다. 김 회장에 대한 법원의 엄벌은 이같은 시대상황을 반영한 최소한의 판결인 셈이다. 재벌 총수들은 이처럼 세상이 변한 점을 깨달아야 한다. 법의 보호와 특혜 속에 머물며 웬만한 잘못에 대해서는 사면받아 온 세월 속에 머물다가는 변화하는 국민과 소비자들에 의해 언제든 침몰할 수 있음을 자각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