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성훈 / 인천본사 사회문체부장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뜨지 못했던 영화가 몇 편 있다. 잭 블랙이 주인공으로 나온 '스쿨 오브 락'도 그 중 하나다. 물론 이 영화의 경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사이에도 영상이 계속되는지라 일종의 '본전 생각'에 자리에 머무른 이유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의자에서 쉽게 엉덩이를 떼지 못한 것은 영화의 진한 여운 때문이었다. 무거운 주제도 아니고, 결말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뻔한 줄거리였지만 참으로 '행복한' 여운이었다.

영화에서 잭 블랙은 록 밴드 단원이다. 그는 무대에서 시쳇말로 너무 '오버'하는 바람에 밴드 단원들과 갈등을 겪고 밴드에서 쫓겨난다. 친구집에 얹혀사는 것도 여의치 않은 지경에 이르자 그는 급한 김에 친구의 이름을 사칭하고 한 초등학교의 대리교사로 취직한다. 시간 때울 궁리만 하다 우연히 음악시간에 학생들이 악기를 연주하는 것을 본 그는 아이들과 함께 밴드 경연대회에 참가할 계획을 세우고 연습에 돌입한다. 그러나 그가 가짜 교사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대회 참가는 무산될 위기에 처한다. 영화의 백미는 자녀들을 데려가기 위해 대회장에 들이닥친 학부모들 앞에서 아이들이 록음악을 연주하는 마지막 장면이다. 음악을 연주하며 아이들이 행복해 하는 만큼, 부모들의 얼굴에서도 행복한 미소가 번진다.

영화의 감동과는 별개로, 영화를 보면서 한가지 부러운 장면이 있었다. 초등학생에 불과한 아이들이 음악시간에 '아란후에스 협주곡'을 연주하는 장면이다. 어렸을 때부터 한가지 악기를 접할 수 있는 교육 환경…. 극히 일부 학교에서 학생 오케스트라를 운영하고는 있지만 입시교육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에겐 꿈같은 얘기다.

그러던 차에 몇개월전 반가운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인천의 한 지역 교육지원청이 관내 한 장학회와 협약을 맺고 주5일 수업제 시행에 따른 토요 특성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청소년 실용음악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것이었다. 실용음악학원을 운영중인 장학회는 강사 지원, 악기 대여, 연습실 및 공연 장소 제공 등의 역할을 맡았다고 한다. 이에 힘입어 학생들로 구성된 7개팀의 실용음악부가 창단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아이들이 끼와 열정을 여과없이 발산하는 '스쿨 오브 락'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런데 최근 이 프로그램과 관련해 안타까운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장학회 측이 학생들의 공연장소를 레스토랑으로 잡고, 콘서트 포스터에 사전 상의 없이 행사 주최로 교육지원청 이름을 넣은 것을 교육지원청 측에서 못마땅해 한다는 이야기가 들리더니, 결국 장학회 측에서 첫 공연무대에 학생들을 올리지 않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더 나아가 교육지원청이 장학회와 맺은 실용음악 지원에 관한 협약을 파기하기로 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물론 교육지원청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레스토랑에서 학생들이 공연을 한다는 것이 왠지 탐탁지 않았고 교육지원청의 이름을 함부로 넣은 장학회 측이 못마땅했을 터이다. 만약 문제가 발생했을 때의 책임 부분도 염두에 둬야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 좀처럼 아쉬움이 가시지 않는다. 특히 우리 관료사회에 뿌리내려 있는 권위주의, 또는 보신주의의 일면을 본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교육지원청이 문제 제기를 한 레스토랑은 수익금 전액을 장학사업에 활용하는 업소로, 일종의 '문화공간' 역할도 하고 있다. 우리의 교육당국이 콘텐츠를 따져보기도 전에 '여긴 이래서 안돼'라는 식의 경직된 사고의 프레임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또 장학회측의 미숙한 일처리로 인해 포스터 제작 과정에서 행정 절차가 조금 어긋났다 하더라도 이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여지는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 교육지원청이 보다 유연한 사고로 대처했더라면 설레는 가슴으로 첫 공연무대를 기다린 학생들이 고개를 숙이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스쿨 오브 락'에서 학부모들과 교장선생님은 아이들이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들을 지배했던 보수적 교육관념과 질서, 권위를 내려 놓았다. 이런 장면이 영화에서만 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