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이사철을 맞아 집을 옮기려는 서민들이 늘고 있지만 마땅한 전셋집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서울 시내 소형 아파트에서는 금리 인하로 인한 월세 전환과 재건축 이주 수요의 급증으로 전셋집을 찾아보기 어렵고, 비싼 중대형 아파트는 가격 부담에 반전세로 돌리는 사례가 많다.

◇개포주공 전월세 비율 3대7 역전…'갈 곳 없는 서민' = 2일 부동산 중개업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에서 보증금 1억원 전후의 소형 아파트 전세 물건이 잘 등장하지 않는다.

   이 같은 현상은 재건축을 앞둔 낡고 협소한 주택이 많은 강남권 저층 단지에서 두드러진다.

   강남구 개포주공 아파트 주변의 T공인 관계자는 "요즘 전세 물량이 많이 나오지않아 수요자들이 집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많이 느낀다"고 말했다.

   개포주공은 5천여가구가 전부 전용면적 60㎡ 이하로 이뤄진 1단지를 포함해 전반적으로 소형 주택의 비중이 크다.

   역시 저가 소형 아파트가 많은 강동구 둔촌주공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둔촌동 D공인 관계자는 "지금 소형 평형 전세는 전멸"이라며 "8월 중순 이후에 나온 전세 물건은 하나도 없고 월세는 2단지 52㎡ 딱 1개만 나와있다"고 전했다.

   본격적인 이사철을 앞두고 전세 물건의 공급량이 부족해진 것은 기존 입주자들이 웬만하면 재계약해 살던 집에 눌러앉는 데다 임대인들이 월세로 돌리는 경향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T공인 관계자는 "예전에는 개포주공의 전세와 월세 비중이 5대5였는데 얼마 전부터 6대4로 월세가 많아지더니 지금은 거의 7대3까지 된다. 요즘 나오는 전월세 물건 10개 중 7개가 월세인 셈"이라고 말했다.

   낮은 금리 탓에 전세 보증금을 은행에 맡겨봤자 이자를 많이 받을 수 없어 집주인들이 더 높은 임대수익을 얻기 위해 월세로 바꾸고 싶어한다는 이야기다.

   D공인 관계자도 "(집주인들이) 재건축 사업이 늦어지고 수익이 많이 안나니 월세로 돌리고 싶어한다"고 설명했다.

   대출을 끼고 집을 산 투자자들이 재건축 사업의 지연으로 갚아야 할 대출 이자 부담이 늘어나자 월세를 받아 이자를 충당하고 싶어한다고 T공인 측은 전했다.

   게다가 송파구 가락시영 아파트 등 강남권 재건축 이주수요가 비슷한 조건의 소형 아파트 전세를 선점해버려 더욱 씨가 마른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달 초부터 이주를 시작한 가락시영 아파트의 전세 보증금 수준은 1억원 미만이어서 세입자들이 비슷한 금액에 옮길 수 있는 아파트가 개포주공, 둔촌주공, 고덕주공 등 주변 재건축 추진 단지로 한정되기 때문이다.

   D공인 관계자는 "8월 중순부터 둔촌동으로 가락시영 이주자들이 넘어오기 시작했다"며 "이사철에 접어들면서 둔촌동 중개업소마다 소형 아파트 전세 대기자가 서너명씩 있는데 7월부터 대기 중인 손님들도 있다"고 전했다.

   연말 이주할 예정인 서초구 잠원동 대림아파트와 반포동 한신1차 거주자들도 미리 주변 전셋집을 알아보러 다니고 있어 서초구 일대 소형 아파트도 비슷한 현상을 겪을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신반포 10차 인근의 L공인 관계자는 "전세 물건이 부족한데 집주인들이 월세나 반전세로 돌리는 경우는 예전보다 늘고 있다"고 말했다.

   ◇'올라도 너무 올라' 반전세로 = 세입자들은 매달 비용을 내야 하는 월세보다 원금을 보전받을 수 있는 전세를 당연히 선호하기 마련이지만 최근 1~2년 사이 전세가격이 너무 올라버려 어쩔 수 없이 반전세로 계약하는 사례도 많다.

   반전세 전환은 절대적인 보증금 수준이 높은 강남권 중형 아파트 단지에서 주로 나타나 중산층 주거 부담을 가중시킨다.

   송파구 잠실주공 5단지 인근 P공인 관계자는 "휴가철이 끝나고 반전세로 계약하는 사례가 부쩍 늘고 있다"며 "전세금이 최근 5천만원 가량 오르니까 임차인도 부담스럽고 임대인도 딱히 돈을 굴릴 데가 없으니 서로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2년 전보다 크게 오른 전세 보증금을 한 번에 감당하기 어려워 가격 상승분을 월세로 내는 '고육지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전언이다.

   이 아파트 전용면적 103㎡는 전세시세가 2억원대 후반~3억원으로 올라 보증금 2억원, 월 40만원으로 반전세 계약을 하는 세입자들이 많다.

   5천가구가 넘는 인근 잠실엘스 아파트도 분위기가 비슷하다.

   잠실동 S공인 관계자는 "기존 세입자 80~90%가 재계약하다보니 전세는 물건이 거의 없다"며 "워낙 금리가 낮아 집주인들이 전세가격 인상분을 월세로 돌리는 형태의 반전세를 많이 내놓는다"고 밝혔다.

   이 아파트 전용면적 84㎡의 전세시세가 4억원대 후반으로 올랐는데 이 가격에도물건을 구하기 어렵자 수요자들도 보증금 4억원, 월 50만원에 반전세 계약을 맺고 있다.

   신반포 10차도 전세금 부담에 전용면적 76㎡ 기준으로 보증금 2억원에 월 30만~40만원대로 반전세 계약을 하거나 보증금 2천만원에 월 110만원으로 월세 계약을 하는 세입자들이 늘고 있다.

   ◇전문가 "월세 증가 당분간 이어져…서민 주거안정 필요" = 부동산 전문가들은전세가 줄고 월세가 늘어나는 경향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며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우리은행 홍석민 부동산연구실장은 "금리가 낮아 전세금을 은행에 넣고 세금을 떼면 이율이 3%도 안 된다"며 "전세의 전제 조건은 집값 상승분이 물가보다 높아야 한다는 것인데 당분간 그럴 가능성이 없으니 이런 추세라면 언젠가는 전세 제도가 없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닥터아파트 이영호 리서치연구소장도 "전셋값이 워낙 오르다 보니 가격 인상분을 월세로 전환하는 반전세가 늘고 있다"며 "강남 3구를 중심으로 인기있고 비싼 지역은 반전세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이처럼 전세 공급이 점차 줄어들고 돈이 있어도 집을 사기보다 전세로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탓에 수요 공급의 원리에 따라 전셋값은 계속 상승곡선을 그릴 가능성이 크다.

   국민은행 박원갑 부동산수석팀장은 "예전처럼 1억원 이하로 구할 수 있는 전세 아파트가 서울 시내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다"며 "서민들이 전세로 살면서 돈을 모아 나중에 집을 사고 중산층으로 진입할 수 있는 길목이 차단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