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초등학생 납치 성폭행 사건이 온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치가 떨리고 진저리가 나 더 이상 떠올리고 싶지 않다는 사람도 많지만, 이 사건은 변명의 여지 없는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는 범인 고종석의 진술은 이 사건이 최근 사회문제로까지 부각됐던 '주폭(酒暴)'등 음주 범죄의 한 범주임을 보여준다. 피해아동이 '운이 없어서' 당했다는 그의 얼토당토 않은 궤변도 도덕성 보다는 자기합리화가 더 우선인 이 사회의 단면이다. 아동음란물을 탐닉해온 범인의 행태가 범행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 역시 마음만 먹으면, 아니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도 음란물을 접할 수 있는 이 사회가 잉태했다. 고종석 외에 이미 통영 초등생 납치살해 사건의 김점덕, 지난 2010년 서울 영등포 초등생 납치 성폭행 사건의 범인 김수철도 아동 음란물에 빠져있던 인물들이었다.

그동안 흉악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사법당국과 정부, 정치권은 한 목소리로 대책마련을 요구하고 다짐해왔다. 이번 사건도 예외는 아니다. 파장이 워낙 커서인지, 대선이 코앞이어선지는 몰라도 너나할 것 없이 재발 방지와 치안 확립을 강조하고 있다. 이른바 '주취작량감경(酒醉 酌量減輕)'에 대한 문제점이 지적되고, 전자발찌 제도의 보완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급기야 경찰이 2년전 사라졌던 거리 불심검문을 부활하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비록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 할지라도 고칠 게 있으면 고쳐야 하고 보완해야 할 게 있으면 보완해야 한다. 콩나물 시루에 부은 물이 다 빠져나가도 그 물기를 먹고 콩나물이 자라듯 국민의 생명과 관련된 문제는 백번을 노력하고 투자해도 아까울 게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금까지의 요란스런 대책들이 국민들의 눈에는 모두 용두사미였고 끓었다 식는 냄비였다는 점이다.

우리는 불심검문의 폐해, 범인의 인권문제에 이의를 제기하는 입장에 원칙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병자의 생명이 위중한 상황에서 치료법의 부작용을 먼저 걱정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그건 별도로 논의해야 할 문제다. 우리 사회가 방치한 종기가 곪을 대로 곪았다면, 그 종기를 제거해야 할 책임도 우리와 이 사회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