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대통령선거 출마를 선언한 무소속 안철수 후보의 대선정국 파괴력은 예상대로 대단했다. 당내 경선을 통해 후보로 확정된당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를 기세면에서 압도하고 있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안 후보는 양자대결에서 박 후보와의 격차를 벌리며 1위를 차지했다고도 한다. 여당과 제1야당의 대선 후보들이 무소속 후보에게 치이는 현상은 우리 정치사에서 전무후무한 사례이다. 안 후보는 40%를 넘나드는 기존 정치와 정당을 혐오하는 무당파 유권자들의 성원을 출마선언만으로 확보한 것이다. 안 원장은 그 힘을 바탕으로 부드럽지만 강력하게 여야 후보를 추궁하고 나섰다.

안 원장은 먼저 민주당측에 '국민이 동의할 만한 정당쇄신'을 요구했다. 이것이 안되면 단일화는 없다고 했다. 민주당 문 후보가 대통령후보로 확정되자마자 단일화를 압박한데 대한 단호한 답변이다. 한국정치의 후진성이 퇴행적인 정당정치에서 비롯된 만큼 정당쇄신 없이는 민주당과 함께 할 수 없다는 얘기다. 단일화를 졸라대는 민주당에 오히려 쇄신을 당당히 요구한 것이다. 후보단일화를 집권의 전제로 생각하는 민주당이 이제는 안 후보에게 당 혁신의 증거를 보여주어야 할 처지에 몰린 것이다. 낮에는 민주당, 밤에는 안철수 캠프를 기웃거린다는 민주당 의원들을 데리고 문 후보가 이 숙제를 잘 풀어낼 것인지 지켜 볼 일이다.

안 후보는 또 새누리당 박 후보의 역사인식과 관련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힘든 인간적인 고뇌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통령 후보 자격으로는 본인이 가진 정확한 생각을 밝히는 게 바람직하다"고 점잖게 훈계했다. 인간적인 동정을 표하면서도 할 말은 하는 이같은 화법 자체가 신선하다. 박 후보로서는 '유신공주'라는 민주당의 직설화법 보다 훨씬 대응하기 곤란할 것이다. 박 후보는 더 이상 이전 발언 수준으로 과거를 관리하기 힘든 처지에 몰렸으니 딱한 일이다.

안철수가 여당의 박근혜와 제1야당의 문재인을 추궁할 수 있는 동력은 여야의 썩은 정치를 외면했던 국민들로 부터 나온 것이다. 혐오스러운 한국 정치와 정당의 발등을 국민이 안철수라는 도끼로 내리 찍은 것이다. 여야 정당과 대선 후보들은 안철수의 등장을 정치공학적으로 셈할 것이 아니라 민심에 각인된 정치불신의 근원을 살피는 계기로 삼아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