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남편과 함께 수년째 안산시에 살고 있는 필리핀 여성 A씨는 얼마 전 남편과의 오랜 불화를 견디다 못해 이혼을 결심하고 경기도의 한 법원을 찾았다. 법원은 몇가지 서류를 요구하고, 간단한 절차를 거친 뒤 이들의 이혼을 결정했다.

A씨와 비슷한 이유로 이혼을 하기 위해 서울가정법원에 소송을 낸 가정주부 B씨는 법원에서 주최하는 이혼 위기 부부 캠프에 남편과 참여한 뒤 생각을 바꿨다. 캠프에서 서로에 대한 마음을 재확인하면서 가정을 다시 지키기로 결심한 것. B씨는 "캠프에서 남편과 속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다시 한번 노력해보자는 생각에 이혼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혼 가정, 다문화 가정이 전국에서 가장 많은 경기도에 정작 위기가정을 돌보는 가정법원의 설치는 수년간 지지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 사이 전국 각지에 가정법원이 들어섰고, 가정법원의 역할도 다양해지면서 경기도민들은 상대적으로 소외받는 처지다.

23일 경기도와 수원지법 등에 따르면 지난해 도내에서는 2만8천400여 쌍이 이혼, 전국에서 이혼 가정을 가장 많이 배출하는 지자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또 매년 이혼율이 증가하는 다문화가족이 경기도(4만여가구)에 가장 많이 거주하면서 다문화 이혼 건수 역시 전국 최고 수준이다. 소년보호 사건은 서울가정법원 다음으로 많다. ┃관련기사 3면

때문에 지역구 국회의원을 비롯, 많은 시민들이 가정법원 설치를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지만 수년째 제자리 걸음이다. 지난 2008년 정미경 전 의원이 국회에 법안을 제출했지만 임기 만료로 폐지됐으며, 지난 5월 김진표 의원이 또다시 관련 법안을 제출했지만 아직 처리되지 못한 채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 사이 부산과 대구 등 지역 곳곳에 가정법원이 들어서거나 가정지원이 법원으로 승격되면서 위기가정을 위한 다양한 지원 정책을 펴고 있다. 부산에는 지난해 4월 가정법원이 설치됐으며, 대전과 대구, 광주는 역시 지난 3월에 가정법원이 들어섰다. 또 오는 2016년 3월에는 인천가정법원과 부천지원이 개원할 예정이다. 이들 가정법원은 전문법관 제도를 도입하고, 대법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이혼 가정과 다문화가정, 소년 사범들에 대한 캠프와 상담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수원지법 관계자는 "도내 이혼율을 줄이고 소년 범죄를 막기 위해서는 법원에서 적극적으로 캠프와 상담 등을 열어야 하는데 지법 수준에서는 다양한 사업을 벌이기엔 역부족"이라고 전했다.

/김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