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초기 국군에 의해 학살당한 민간인 희생자 유족들에게 국가가 정신적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상규명 결정이 사건 발생 59년 만인 2009년에야 이뤄진 만큼 '손해배상 청구권 시효가 소멸됐다'는 국가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3부(이우재 부장판사)는 임모씨 등 173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총 21억3천여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고 30일 밝혔다.

   이로써 국군의 양민학살 발생 60여년 만에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가 받아들여졌다.

   재판부는 "당시 군인들이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헌법이 보장하는 신체의 자유, 생명권, 적법절차에 의해 재판받을 권리 등을 침해했고, 희생자와 유족은 그로 인해정신적 고통을 겪었다"며 이같이 판결했다.

   재판부는 이어 "한국전쟁 이후 남북분단의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받았을 차별과경제적 궁핍, 오랜 세월 동안 물가와 소득수준이 크게 상승한 점 등을 고려해 위자료 액수를 정했다"고 덧붙였다.

   다만 재판부는 국군의 주민소개 작전으로 집이 불타 마을 인근 개울가에서 자다가 동사(凍死)한 희생자와 2007년 다른 사건의 진실규명 결정에 포함된 희생자 유족에 대해서는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동사는 국가의 반인륜적 범죄로 인한 것으로 볼 수 없다. 국가의 불법행위 사실을 알고 3년을 넘긴 후 소송을 제기한 당사자의 청구권은 시효로 소멸됐다"고 설명했다.

   국군 11사단은 1950년 8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전라남북도에서 빨치산 토벌작전을 전개하면서 비무장 민간인들을 상당수 살해했다.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9년 3월 이 사건에 관해 진실규명 결정을 하고, 국가의 공식 사과와 위령사업 지원 등을 권고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