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의 이미지는 이미 우리 생활에 친숙하다. 오지 산골에서부터 대도심에까지 농업협동조합, 신용협동조합, 수산업협동조합, 생활협동조합 등이 존립기반을 다져 우리의 소비와 유통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내달 1일 발효되는 협동조합기본법은 그러나 기존의 조합과는 기반 자체가 다르다.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부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상생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새로운 협동조합 탄생은 풀뿌리 경제의 대안으로 여야 할 것 없이 정치인들의 합의 주도로 '협동조합기본법'이라는 새 틀을 만들어 낸 것이다.
쉽게 풀이하면 다음달부터 5인 이상의 개인 또는 개인사업자들이 모여 조합설립이 가능하다.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어떤 사업영역에도 도전할 수 있다. 금융업과 보험업만 제외시켰다.
시골에서 고구마, 감자농사를 짓는 농부가 같은 일을 하는 사람 4명을 더 모아 협동조합 설립 신청을 하면 이들끼리 공동생산, 공동판매, 공동이익배분 등을 손쉽게 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법인의 형태를 갖추지 않으면 불가능했던 일이다.
보통 주식회사는 '1주당 1표'의 권리행사를 하지만 협동조합은 '1인 1표' 권리행사를 통해 출자금액에 관계없이 누구나 동등하게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좋은 취지로 만든 건전한 주식회사가 특정 주주가 지분을 사들이면 사실상 1인 대표주주 체제로 변질되는 것과 차별화되는 개념이다. 지역사회 경제구조에 일대 변환이 예고되고 있다.
유독 정치인들이 이 법의 통과를 서두른 데는 최악의 경기침체로 실업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일자리 창출만이 유권자들의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자 획기적 대안으로 정치적 입지를 다질 수 있다는 계산이 주효했다.
아울러 금융자본주의 위주의 이기적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과 대립이 아닌 지역 내 상생과 협력과 공동체의 가치를 발전시킬 수 있는 사회적 공감대 형성도 이 법 탄생의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세계적인 협동조합 모델이 되고 있는 스페인 발렌시아에 위치한 판매협동조합 '아네코프'는 1975년 농민들이 모여 효율적인 물량확보와 유통체계구축이 필요함을 인식하고 '하나의 농협'을 만들기로 의견을 모으고 지역농협 연합체로 출범했다. 현재 오렌지는 세계 2위, 감귤은 세계 1위의 유통량을 자랑하며 연간 매출이 1조원에 이르고 있다.
운도 따랐다. 아래로부터의 운동이 법제화되기란 쉽지 않다. 신협운동이 1960년대 시작돼 1971년도에 법제화됐고, 생협도 1985년 가내수공업에서 시작해 법제화하는 데 15년 정도 걸렸다. 하지만 협동조합기본법은 곧바로 통과됐다.
재벌위주로 수출에 올인하면 내수는 부수적으로 활성화될 것이라는 기대가 깨진 지 오래고, 무상급식 논쟁을 벌이면서 '생산적 복지'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전파되면서 기업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나를 따르라'는 식의 전투형 경제동력 모델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가 온 것이다. 전투대원 모두의 합의와 설득으로 승리의 기쁨을 똑같이 만끽하자는 논리일 게다.
하지만 협동조합기본법 발효 자체가 만사형통이 아니다. 이 법의 성패는 후속조치가 더 중요하다. 협동조합을 운영하게 될 대다수 개인사업자들의 인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오로지 교육만이 이들을 일깨울 수 있다. 정부도 법은 통과시켰지만 관련 예산이 미미하고, 전국의 각 지역별, 마을별로 한꺼번에 교육시키기에는 한계가 있다.
일선 자치단체와 지역 시민사회단체 등을 통해 새로운 협동조합을 구성하려는 역량있는 재원들을 발굴, 육성하고 교육시키는 일이 뒤따라야만 한다. 현재 운영중인 마을운영법인을 협동조합으로 유도한다거나 마을사업을 하는 마을단위를 협동조합으로 묶어 '협동조합'을 설립해 운영하고 홍보와 마케팅, 체험관광 등 다양한 사업을 공동으로 해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