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후 2시께 시흥시 정왕동의 시화산업단지 초입. 거대한 화물 트럭들이 오가는 도로마다 공장 부지와 건물을 싼 값에 임대한다는 현수막 수십개가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대부분 230여㎡에서 990여㎡ 사이의 소규모 공장을 시세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내놓은 것이다.
단지 안쪽으로 들어가자 이번엔 '부도정리'라는 큼지막한 광고를 내걸고 유명브랜드의 의류와 잡화를 떨이로 판매하는 공장이 나타났다. 산업단지 내에서 제조업 외의 매매업은 불법이지만, 단기 임대료라도 건지기 위한 소유주의 마지막 방법인 듯했다.
시화산업단지와 인접한 안산의 반월산업단지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 주변 공장 관계자는 "제조업이 불황이다 보니, 공장 문을 닫고 부지를 내놓은 곳이 많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시화·반월산업단지의 중소기업들이 원가상승과 마진 감소 등 이중고에 시달리면서 벼랑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헐값에 내놓은 공장이 수두룩한 데다 일부에서는 임대료라도 건져보기 위해 불법도 서슴지 않고 있다.
한국산업단지공단 등에 따르면 현재 시화·반월산업단지의 공장 부지 매매가는 평균 3.3㎡당 350만원선. 지난해만 해도 380만원 정도를 유지했지만 올해는 더 떨어졌다. 조업을 중단하고 매물로 내놓은 공장들이 수요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헐값에도 처분하지 못한 일부 공장은 경매로 넘어갔다. 현재 공단내 여러 개의 공장이 경매에 부쳐져 있는데, 이 중 시화공단에서 지난 8월 경매로 나온 A공장(대지 1천710㎡, 건물 541㎡)은 감정가로 21억여원이지만, 여러 번 유찰 끝에 현재 14억7천500여만원까지 떨어진 뒤에도 아직 주인을 찾지 못했다.
제조업 임대가 여의치 않자 매매업에 단기 임대를 내주는 공장까지 생겨났다. '산업집적활성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산업단지 내에서 제조업을 제외한 업무는 불법이다. 안산·시화단지내 공장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은 95% 이상이 중소기업인 데다 몇 년 동안 원가가 대폭 상승한 기계업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 특히 값싼 중국산에 밀리면서 원청업체로부터 단가 인하 요구를 끊임없이 받고 있다.
한국산업단지공단 관계자는 "매매업을 하고 있는 공장에는 구두로 시정조치를 하고 재발방지를 약속받았다"며 "단지내 중소업체들이 여러모로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고 전했다.
/김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