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지체아 아들을 두고 있는 崔모씨(41)는 지난 여름 자신이 운영하던 성남의 공장 문을 닫고 재산을 정리, 이국땅 캐나다로 이민을 떠났다.

자수성가를 통해 얼마간의 富를 축적했고 비록 장애를 겪고 있기는 하지만 나날이 건강하게 자라는 아들을 바라보며 행복한 삶을 꾸려왔ㄷ 崔씨가 조국땅을 떠나게 된 사연은 실로 기막히다.

언어장애 때문에 정상적인 학교에 보내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한 崔씨부부는 한 종교단체에서 설립한 특수학교에 아들을 보냈다가 인근 주민들로 대변되는 이사회의 살풍경에 회복불가능한 상처를 입고 말았다.

설립초기부터 인근 아파트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쳤던 이 학교 진입로에는 주민들이 내걸어 놓은 현수막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고 글을 배운 아들이 '우리 아이들을 정신병자들과 놀게 할 수 없다'는 현수막의 내용을 알게되면서 방문을 걸어잠근채 심각한 대인 기피증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다른 사람의 소중한 자식보다 집값이나 동네 이미지 떨어지는 것을 먼저 생각하는 나라에 더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崔씨의 마음은 슬픔보다는 오히려 분노에 가까왔다.

80년대이후 초고속 성장의 테두리 안에서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 된 우리사회는 '질보다 양'이라는 가난했던 시절의 잣대를 버리고 너나할 것 없이 '보다 낳은 삶의 질'에 관심을 갖게 됐다.

단칸방이라도 내집마련이 지상과제였던 과거에서 벗어나 전망과 환경이 뛰어난 집을 고르게 됐고 이같은 '인간다운 삶'에의 추구는 어느새 “내 집앞에는 절대로 안돼”는 집단이기주의로 변질됐다.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 이 무조건적 집단이기주의는 '혐오시설 절대반대'의 양상으로 나타나 시위의 단골메뉴가 돼버렸고 지자체들은 쓰레기 소각장,불우시설등 '혐오시설'로 일컬어지는 부지의 확보에 골머리를 앓게됐다.

이웃이 애경사를 당했을때 너나 할 것없이 먼저 달려가 품을 팔고 십시일반 힘을 보탰던 우리사회의 '더불어사는 삶'은 이제 오간데가 없다. 농자를 천하의 대본으로 여기던 우리 선조들은 서로 돕고 도움을 받는 두레를 탄생시켰고 독특한 협동단체인 계를 만들어냈다.

집단이기주의를 밀어내고 그자리를 두레와 계의 미풍양속으로 채우지 못한다면 새천년은 희망과 꿈보다 살벌함과 각박함이 판치는 세상일 뿐이다. /裵相祿기자·bsr@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