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로 사람의 생명·신체에 상당한 위험이 발생했다고 판단되면 집주인이 거부하더라도 경찰이 강제 진입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
경찰이 현장을 확인하는 도중에 범죄가 진행 중이거나 범죄의 흔적을 발견하면 영장 없이 압수수색 등 강제조사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경찰의 실제 지침 적용과정에서 오ㆍ남용 등에 따른 개인의 사생활과 인권 침해를 우려하는 의견이 적지 않아 논란이 예상된다.
16일 경찰에 따르면 경찰청은 가택 강제진입 등을 골자로 한 '위급상황 시 가택출입·확인 경찰활동 지침'을 최근 일선에 배포하고 시행에 들어갔다.
경찰은 이 지침에서 범죄로 인명이나 재산상 피해가 절박한 때, 위해 방지나 피해자 구조 등을 위해 부득이한 경우 필요한 한도 내에서 타인의 건물에 강제로 진입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기존에는 건물주가 거부하면 현행범이 아닌 한 경찰이 강제로 들어가거나 현장을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다. 수원 부녀자 살인사건(일명 오원춘 사건), 수원 내연 남녀 동반자살 사건 등을 경찰이 막지 못한 이유로 이런 법적인 권한 문제가 여러 차례 거론되기도 했다.
경찰은 ▲살인이나 강도, 강도, 강간 등 용의자에게 부과될 형벌의 가중도 ▲용의자의 무기 소지 여부 ▲신속하게 진입하지 않을 경우 피해자가 피해를 면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는 경우 ▲용의자가 현장에 있다고 믿을 만한 강한 근거가 있는 경우 등 범죄로 인한 위험에 상당 부분 개연성이 있는 경우로 긴급 진입 요건을 한정했다.
112신고를 받은 경우는 명백한 허위신고라고 보이지 않는 한 범죄가 발생하고 있다고 판단할 만한 상당한 개연성이 있다고 규정했다.
가정폭력범죄 신고의 경우는 피해자 보호 차원에서 강제 진입해 조사도 가능하다고 명시했다.
위험발생 장소가 극히 소수의 가택으로 압축되거나 탐문 중 현저한 증거를 발견했을 때도 책임자에 보고 후 즉시 강제 진입이 가능하도록 했다.
위험발생 장소가 수백 미터로 광범위하거나 단시간에 전면적인 진입이 불가능하면 가택을 방문해 특이사항을 목격했는지 확인하는 방문 탐문이나 주인이 동의한 가운데 진입하는 절차 등을 선행하기로 했다.
경찰은 이 지침에서 긴급 진입한 경찰관이 필요한 한도 내에서 외관상 '확인'을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확인 도중 범죄가 진행 중이거나 범죄의 흔적을 발견했을 때는 영장 없이 압수수색이나 검증, 피의자 수사도 가능하다고 적시했다.
경찰은 다만 상황 설명과 함께 가택 진입에 대한 동의를 먼저 구하고 필요한 범위에서만 강제 진입권을 행사하기로 했다. 경찰 신분증을 먼저 제시하고 가능한 경우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이나 이웃주민 등 입회하에 가택에 진입하기로 했다.
경찰은 애초 경찰관직무집행법을 개정해 긴급출입권을 확보하려 했으나 법무부의 반대로 정부 입법이 사실상 좌초되자 기존 경찰관직무집행법과 형사소송법을 적극 재해석해 이 같은 지침을 만들었다.
하지만 실제 지침 적용과정에서 일부 공권력 오ㆍ남용에 따른 개인의 사생활 및인권 침해 등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아 논란이 예상된다.
특히 국민의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인 만큼 충분한 여론 수렴을 거쳐 국회 개정안 발의 등 법 개정을 통한 공권력 행사가 바람직하지만 경찰의 내부 운영규정 성격인 지침 형식으로 시행하는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신체의 자유나 주거 안정권은 굉장히 사적인 것이고 그 권리가 침해됐을 때의 피해는 회복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막심하다"며 "일정 정도의 절차도 없이 현장 판단만으로 이를 제한하려고 하면 안된다"고 비판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날로 흉악해지는 범죄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권한이라고 판단, 이번 지침을 만들어 하달했다"면서 "인권 침해 소지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대한의 안전장치를 설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합뉴스
위급하면 주인 허락 없이 가택진입… 경찰지침 개정
범죄 흔적 발견하면 영장 없이 현장 압수수색도
"신체자유ㆍ주거안정권 제한우려" 법개정 아닌 지침시행 논란
입력 2012-12-16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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