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된 건물 자리의 공터는 주차장이 됐다. 철거구역을 둘러싼 철제 담 틈으로 보이는 땅에는 갈대와 잡초가 무성하다. 4년전 이맘때 용산참사가 터진 서울 용산구 한강로동 남일당 터의 지금 모습이다.

오는 20일이면 철거민 농성자 5명과 경찰특공대원 1명의 목숨을 앗아간 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4년이 되지만, 철거민과 희생자 가족은 여전히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긴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폐허 된 자리…"차라리 대화라도 하지" = 용산참사 당시 철거민들의 망루가 있었던 남일당 건물은 2011년 초 철거됐다. 이곳을 포함한 '용산 4구역'에는 계획대로라면 주상복합 등 초고층건물 6개동이 들어서야 한다.

그러나 용산참사 이후 재개발조합과 시공사 간 추가분담금 문제가 생겨 계약을 해지하고 업체를 재모집하는 등 악재가 겹쳤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시장 침체도 사업이 지연되는 하나의 원인이다.

남일당 터 인근에서 20년간 정육점을 운영 중인 한 상인은 17일 "철거하기 전까지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 장사가 잘됐는데 철거 이후 찾는 사람이 확 줄었다"며 "주변 고층빌딩과 사업이 같이 시작됐는데 이곳엔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철거민 피해자 유가족과 시민단체는 불필요하게 성급한 사업 추진으로 희생자를내고 결국 공사까지 발목을 잡혔다며 분노하고 있다.

유가족과 시민단체는 최근 기자회견에서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곳은 개발되기는커녕 폐허로 남아 있다"며 "폐허로 남길 만큼 급하지 않은 개발이었다면 주민과대화하고 설득했으면 되지 않았느냐"고 비판했다.

◇'끝나지 않은 싸움'…진상조사·관련법 제정 요구 = 2009년 말 용산참사 보상등에 관한 합의가 이뤄지고 사망자 장례가 치러진 이후 이 사건은 점차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피해자 가족에게 용산참사는 현재 진행형이다.

이들은 참사 당일 경찰의 진압을 이명박 정부 집권 기간 자행된 '국가폭력'의 대표 사례로 규정한다. 무리한 진압을 누가 지시했는지에 대해 정부가 조사위원회를꾸려 진상을 밝히고 재심을 열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징역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인 철거민 6명의 사면도 요구하고 있다. 징역형을 받은 철거민 8명 중 2명은 작년 10월 가석방됐다. 나머지 6명은 형량에 따라 짧게는 올해 10월까지, 길게는 2015년 1월까지 수감 생활을 해야 한다.

재개발 예정지 철거를 둘러싼 충돌을 막는 '강제퇴거금지법' 제정도 이들의 요구 중 하나다. 이 법안은 18대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폐기됐고, 19대 국회에서도 정청래 의원 등 20명이 발의했으나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이 법안은 도시개발사업에 대해 재산권 보호에 초점을 맞춘 기존 패러다임을 전환, 주거권 보장 수단으로서 강제퇴거 금지를 명문화했다. 불법철거, 퇴거현장의 폭력행위 처벌 등 제재 조항도 포함했다.

◇새정부 '국민대통합'에 일말의 해결 기대 = 정권을 넘겨받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국민대통합'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은 이들이 일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적어도 임기 초반에는 용산참사 문제 해결을 긍정적으로 검토하지 않겠느냐는 판단이다.

용산참사 진상규명 및 재개발제도 개선위원회가 대선 전 박근혜 당시 후보로부터 받은 답변서에 따르면, 박 후보 측은 구속 철거민 사면에 대해 "국민 대통합 차원에서 충분히 검토할 부분으로 고려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진상규명에 대해서는 "진상규명이 필요한 부분에 대한 적극적인 조사가 필요함에 공감하며 조사 결과에 따라 적절한 조처를 하도록 할 것", 강제퇴거금지법 제정과 관련해서는 "취지에는 충분히 공감한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이원호 용산참사 4주기 범국민추모위원회 사무국장은 "박 당선인이 사회통합을 강조한 만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도 어느 수준에서든 용산참사를 정리하고 가야할 문제로 인식하리라 본다"며 "4주기를 맞아 많은 이들이 여전히 용산참사를 기억하고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인수위를 압박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년간 용산참사와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현상은 다큐멘터리 영화 '두 개의 문'의 흥행이다.

철거민과 더불어 당시 진압작전에 투입된 특공대원도 '무리한 지시'의 피해자로본 이 영화는 관객 7만3천명을 동원, 독립영화로는 상당한 성공을 거둬 용산참사를 다시 사람들의 기억 속으로 되돌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원호 국장은 "특공대원들을 무리한 작전에 투입한 사람들이 여전히 책임지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두 개의 문'은 용산참사가 아직 끝나지 않은 문제임을 많은 이들에게 인식시키고 있다"고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