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 가구가 늘면서 일하는 자녀를 돕고자 손자녀를 돌보는 할머니가 하루 평균 8.86시간 '중노동'을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17일 공개한 '100세 시대 대비 여성노인의 가족 돌봄과 지원방안 연구' 보고서에서 작년 6-7월 손자녀를 돌보는 서울·수도권 거주 여성 노인 3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들이 돌보는 손자녀는 평균 1.34명으로 이중 영아 비율은 39%였다.

돌봄의 주된 이유(복수응답)는 '자녀의 직장 생활에 도움을 주려고'(78.3%)였으며 자녀의 양육비 부담을 줄여주려고(35%), 남에게 손자녀를 맡기는 것이 불안해서(32.7%) 등의 답변이 뒤를 이었다.

이들은 주당 평균 47.2시간 동안 손자녀를 돌봤으나 대체로 일요일(92.3%)이나 토요일(73%)에는 쉴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응답자가 경험하는 신체적·정신적 양육부담은 상당한 수준으로 확인됐다.

절반 이상인 63.7%는 손자녀를 돌보기가 체력적으로 힘들다고 답했다. 마음의 여유가 없거나(55.3%) 살림을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 힘들다(53%)는 답변도 많았다.

손자녀를 돌봐서 경제적 보상이 기대보다 못하다는 응답자는 30%였다.

그럼에도 자녀에게 도움을 줘 보람을 느끼고(84.7%) 손자녀가 커가는 모습을 매일 볼 수 있어 즐거움이 늘었다(83%)는 등의 긍정적인 평가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만약 손자녀를 돌봐줄 다른 방법이 있다면 돌봄을 그만두겠다'고 응답한 노인은 전체 응답자의 67.3%였다.

연구 책임자인 최인희 연구위원은 "손자녀 돌봄을 자발적으로 선택한 여성노인은 절반도 되지 않았다"며 "맞벌이 가구를 위한 자녀양육 지원정책을 보다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배우자를 돌보는 여성노인 3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대체로 노년기 배우자 돌봄을 자신의 몫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배우자를 돌보는 이유(복수응답)는 '자식에게 피해가지 않게 하려고'(48.7%), '배우자가 내가 돌봐주길 원해서'(42%), '내가 돌보는 것이 마음 편해서'(38.7%) 등의 답변 순이었다.

이들 대부분(82%)은 거의 매일 배우자를 돌보고 일주일 중 하루도 쉴 수 있는 날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돌봄 시간은 하루 평균 9.55시간으로, 주당 평균 65.03시간에 달했다.

노인의료비용 지원(92.3%), 간병인 비용 지원(90.3%) 등에 대한 욕구도 높았다.

최 연구위원은 "여성 노인이 노년기가 돼도 여전히 가족 돌봄 노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도 사회적으로 이런 노동이 저평가돼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가족 돌봄에 대한 사회적 보상체계 개발 등 가족 돌봄자를 위한 보편적 지원체계 구축 ▲육아휴직·유연근무제 활성화 등 일·가정 양립정책 내실화 ▲여성노인 지원 프로그램 확대 등을 제안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