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린 월세금을 받기 위해 세입자의 집을 찾았다가 변을 당한 70대 할머니. 집주인 할머니를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세입자.

두 사람의 죽음은 5개월치 월세금 150만원 때문에 일어난 비극이었다.

집주인 A(70)씨가 인천시 남구 용현동에 있는 세입자 B(58)씨의 아파트를 찾은 건 지난달 26일.

A씨는 전 세입자의 소개로 자신의 아파트에 살게 된 B씨가 한번도 월세금을 내지 않자 '직접 찾아가서 받아 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A씨는 B씨를 만난 이후 연락이 두절됐고, A씨의 아들(36)은 지난달 27일0시10분께 '어머니가 실종됐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신고 접수 당일 새벽 4시께 A씨의 아들과 함께 세입자의 아파트를 방문해 B씨를 만났다. B씨의 아파트 내부를 샅샅이 뒤졌지만 특별히 범죄를 의심할 만한정황을 발견하지 못했다. 같은 날 오전과 다음날에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경찰은 A씨가 실종 전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 B씨인데도 그의 태연한 말투와 행동에 넘어가 B씨를 용의자로 지목하지 않았다.

경찰이 B씨를 의심하기 시작한 것은 A씨가 실종된 지 나흘째인 지난달 29일. 그날 오전 8시 35분께 B씨를 경찰서로 임의동행해 1시간 30분가량 참고인 조사를 한 경찰은 그때까지도 그의 범행을 눈치 채지 못했다.

B씨는 당시 경찰 조사에서 "할머니에게 월세 90만원을 줘 그날(26일) 오후 2시30분쯤 돌려 보냈다"고 태연하게 거짓 진술했다. 경찰은 B씨에게서 범죄 혐의점을 찾을 수 없다고 판단해 그를 또 돌려보냈다.

그러나 경찰은 B씨를 풀어준 뒤 3시간여 지나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 그의 전과기록을 조회했고, 강도살인 전과가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급히 강력반 형사들을 동원해 B씨의 아파트로 달려갔지만 B씨는 이미 잠적한 상태였다.

3차례에 걸쳐 용의자의 집 내부를 정밀 수색하고 용의자를 경찰서로 불러 조사까지 했지만 경찰은 그의 태연한 거짓말에 속고 말았다.

보호관찰소와 경찰의 우범자 관리에도 허점이 드러났다.

강도살인 등 전과 5범인 B씨는 경찰의 중점 관리 대상자에 해당됐다. 통상 살인이나 성폭행 등 재범 우려가 있는 우범자가 출소하게 되면 해당 교도소 측이 우범자거주지의 관할 경찰서에 통보하게 된다.

그러나 B씨는 형기 만료일보다 2년가량 먼저 출소해 인천보호관찰소의 관리를 받았다. 인천보호관찰소는 우범자로 분류됐던 B씨에 대해 경찰에 통보하지 않았고, 결국 경찰도 B씨의 관내 거주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교도소나 보호관찰소에서 대상자를 통보해 오지 않으면 우범자를 파악할 방법이 없다"고 해명했다.

경찰은 뒤늦게 B씨를 검거하기 위해 인천 시내 일대를 대대적으로 수색했지만 허사였다.

B씨는 지난 16일 오전 10시 43분께 연수구 청학동의 한 야산 나뭇가지에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그의 지갑 속에는 강화의 한 요양원에서 홀로 지내는 노모와 수년째 연락이 끊긴 딸에게 남기는 메모가 발견됐다. 피해자 가족에게 용서를 비는 내용도 함께적혀 있었다.

B씨는 메모에서 "어머님 죄송합니다. 불효자식은 사랑하는 어머님을 두고 한 많은 세상을 먼저 떠납니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됐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썼다.

이어 "자격이 없는 아빠지만 그래도 너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메 눈물밖에 안난다"며 "피해자 가족분들 정말 죄송합니다"는 쪽지도 남겼다.

경찰은 용의자인 B씨가 숨진 채 발견되자 A씨도 살해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B씨의 아파트 내부를 다시 수색했다.

결국, 지난 17일 오후 5시 50분께 세입자 B(58)씨의 아파트 내 지하 쓰레기장에서 스카프로 목이 졸린 상태로 숨진 A씨의 시신을 발견했다. A씨가 밀린 월세 150만원을 받으려고 집을 나섰다가 실종된 지 23일 만이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