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우영 사회부장
인구 1천250만명, 31개 시·군, 서울면적의 17배, 전국 중소기업체 수의 4분의 1. 경기도의 외형적 규모다. 액면대로라면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경제활동, 사건·사고, 각종 일상 들의 4건중 1건은 경기도에서 벌어지는 셈이다. 법률수요 역시 월등히 많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엉뚱하게도 경기도는 법률서비스의 사각지대다. 소송에서의 억울함을 배제하고, 공정한 심판받을 기회를 주기 위해 3심제를 채택하고 있건만, 경기도민들은 차별을 받는다. 경기도에 고등법원이 없기 때문이다. 항소심부터는 서울로 가야 한다. 시간적·경제적 비용이 만만치 않다. 고법 설치는 소송사건수, 인구수, 관할면적, 교통사정, 지역적 특성을 고려토록 하고 있다.

하지만 경기도엔 고법이 없으니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전국 최대 규모의 행정구역에 고법이 없는 것도 후진적이지만, 너무나 당연한 고법설치의 필요성 제기를 마치 떡하나 더달라고 떼쓰는 정도로 취급하는 기득권층은 정말 문제다.

고등법원은 지난 1963년 12월에 제정된 '각급 법원의 설치와 관할구역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서울, 부산, 대전, 대구, 광주 등 5개소가 설치돼 있다. 또 항소심 재판을 받을 수 있는 원외재판부는 제주, 전주, 청주, 춘천, 창원 등에 5개소가 있다. 1992년 대전고법 설치를 마지막으로 20년이 넘은 지금까지 고법 신설은 없었다. 서울을 비롯, 경기·인천, 강원도의 항소심은 서울고법이 홀로 관할한다.

서울고법 관할구역내 인구는 전국의 52%, 서울고법의 항소심 사건은 전국의 64% 규모다. 부산·대전·대구·광주 등 4개 고법이 담당하는 사건수보다 2배 가까이 많다. 업무폭주가 있을수밖에 없다. 법원이 과다한 업무에 시달리니, 재판은 지연되기 일쑤고 소송당사자들의 신속한 법적 권리구제는 딴 나라 먼 얘기다.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기대하는 건 애당초 무리다.

이중 경기도의 법률수요는 워낙 많다. 경기남부지역을 관할하는 수원지법에서만 서울고법으로 이송되는 항소건이 서울고법 업무의 19.2%에 달한다. 업무량만 놓고 볼때 수원지법 사건만으로 고법설치가 가능한 상황이다. 경기도 전체의 경우 지난 2008년 수원지법·의정부지법에서 서울고법으로 이송된 사건은 총 4천400여건으로 대구고법(1천859건) 보다 3배 가량 많았다.

하지만 경기도민들은 과다한 비용과 시간을 감수하면서 서울에서 '원정재판'을 받아야 한다. 이런 사정일진대 경기고법 설치의 당위성을 더 논할 필요가 있을까.

경기고법 설치를 위한 노력은 그간 있어 왔다. 지난 2010년 경기고법유치 범도민추진위가 출범했고, 17대 국회인 2007년부터 도내 국회의원들의 고법설치를 위한 법개정이 추진돼 왔다. 그러나 임기만료 등으로 법안이 폐기되는 등 번번이 실패했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작용한다. 서울 중심으로 울타리를 치려는 법조계 분위기, 수원보다는 서울이 가까운 일부 경기북부지역의 반대, 특별시와 광역시에만 고법이 설치된 데 따른 타 시·도와의 형평성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정부와 도내 국회의원들의 직무유기성 방관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젠 경기고법 설치에 힘을 모아야 할 때다. 우선 지도층이 나서야 한다. 현재 원유철 새누리당의원과 김진표 민주통합당 의원 등 경기지역 여야 중진 의원들이 각각 발의한 법률개정안이 국회에 계류중이다. 여야를 떠나 함께 내용을 조율할 필요가 있다.

가령 거리에 따라 일부 경기북부 지자체는 서울고법 관할로, 나머지는 경기고법 관할로 조정할 수 있다. 또 설치장소도 수원 광교신도시내 법조타운이 검토되고 있지만, 만약 물리적·경제적으로 어렵다면 다른 부지 물색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런 연후 경기지역 52명의 국회의원들이 응집력있는 행보를 보여야 한다.

경기고법 설치는 경기도의 세를 과시하고자 함이 아니다. 민원인들의 불편을 해소하고 법률 서비스의 효율을 기하고자 함이다. 경기고법 설치를 방관하는 것은 결국 '민생'을 방치하는 것과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