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일 오후 8시30분께 올 회계연도 말까지 850억달러의 연방정부 예산의 작동 삭감(시퀘스터)을 발동하는 명령에 서명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공화당 의회 대표 등과 벌인 막판 협상이 결렬된 뒤 예산 삭감의 효과가 즉각 느껴지지는 않겠지만 중산층은 "체계적으로 삶에 방해를 받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바마는 "고통은 현실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전 세계가 그 파장을 주목하고 있다. 일단 워싱턴DC를 중심으로 한 인근 지역이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됐다.

또 미국 이외 지역에서는 아시아가 가장 이르게 체감하게 된다는 예측이 나왔다.

미국 주요 언론에 따르면 경제활동의 20% 정도를 연방정부 지출에 의존하는 워싱턴DC, 메릴랜드주, 버지니아주 등이 시퀘스터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지역으로 지목됐다.

군부대가 많은 하와이와 알래스카, 방위산업체들이 주로 자리 잡은 뉴멕시코나 켄터키 같은 지역이 그다음으로 악영향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꼽혔다.

미국 밖에서는 시퀘스터의 그림자가 먼저 드리울 지역으로 아시아가 거론됐다.

아시아 지역 전문가들은 시퀘스터 때문에 당장 한국이나 일본에 주둔하는 미군이 철수하지는 않는다고 전제하면서도 군사훈련이나 부대의 이동 같은 활동이 위축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입을 모았다.

전문가들은 물리적인 영향보다도 시퀘스터 논란으로 인해 아시아 국가들이 미국의 아시아 전략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되는 상황이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전임자인 힐러리 클린턴과 달리 첫 해외 순방지를 유럽과 중동으로 정한 점 또한 시퀘스터와 맞물려 미국의 '아시아 중시' 전략을 빛바래게 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일본의 방위비 지출이 최근 11년 만에 증가한 현상도 이런 분위기와 맞물리면 본래 의도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미국에서 시퀘스터가 시행돼도 당장 이날부터 공무원들이 일손을 놓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원칙적으로만 보면 정부 기관들은 440만명에 이르는 연방정부 직원들에게 공식적으로 임시 해고조치나 무급 휴가를 부여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경과조치를 거쳐야 한다.

특히 강제로 무급 휴가를 부여하려면 적어도 1개월 전에 통보해야 한다.

물론 실제로 업무에 지장을 받는 정부 기관도 나타났다.

미국 노동부 산하 노동통계국(BLS)은 청정에너지 사용실태 조사 보고서를 비롯해 발간 예정이던 보고서 3건을 내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퀘스터에 대한 우려는 대부분 미래 시제다.

시퀘스터 때문에 민간 업체와 맺은 계약이 무산되면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는 국방부나 인력 문제 때문에 세금 회피자들에 대한 대응이 둔화할 수 있다는 국세청의 입장이 대표적이다.

유럽연합(EU)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논의할 때 협상력이 저하될 수 있다고 하는 무역대표부(USTR)의 우려나 교사가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교육부의 걱정도 현실화하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러야 할 것이다.

미국 최대 공무원노조인 연방공무원노조(AFGE)은 앞으로 닥칠 어려움으로 무급휴가가 최대 22일 발생해 임금이 20% 삭감되는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는 점을 꼽았다.

또 연금저축 계좌에 대한 (정부) 부담금이 줄고, 건강보험료 공제로 실소득이 줄어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새 공무원 채용도 한층 엄격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백악관 예산관리국(OMB)의 감사관 대니 워펠은 27일 각료들과 정부 기관장들에게 전달한 문서에서 "교육, 회의, 출장 등에 드는 비용뿐만 아니라 새 인력을 채용하는 데 더 철저한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촉구했다.

시퀘스터 때문에 연방정부 예산 850억달러가 삭감될 예정이지만, 복잡한 예산 집행 절차 때문에 실제로 줄어드는 돈은 430억달러 정도라고 외신은 전했다. 연방정부 전체 예산이 3조7천억달러인 데 비하면 미미한 규모다.

최근 의회조사국은 예산 자동삭감에도 많은 항목에서 예외가 적용된다고 밝혔다.

사회보장연금, 저소득층 대상 메디케이드(의료보장), 식량보조, 아동건강보험, 무상 학비보조, 근로소득지원세제 등에는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은퇴한 공무원의 연금수당, 군인 봉급도 그대로 유지된다.

금융시장과 재계도 아직은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오히려 '하품'을 하는 형국이라고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가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는 재정적자 감축과 세금인상 문제를 둘러싸고 공화당과 오바마 행정부 사이의 대립이 이미 5번째로 일종의 '위기 피로증'에 기인한다는 분석이다.

또 정치권의 막판 합의로 결국 시퀘스터를 피하더라도 어차피 3월 후반에 정부예산 시효가 완료되면 공공기능 마비라는 더 큰 문제에 봉착할 수 있기 때문에 미리호들갑을 떨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야당인 공화당에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여당인 민주당에서 시퀘스터의 악영향을 과장한 게 아니냐는 공세마저 펴고 있다.

보수성향인 폭스뉴스도 예산 절감론자들의 발언을 인용, 시퀘스터의 긍정적 효과로 마침내 정부가 긴요하지 않은 부분을 축소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일부 관리들은 이미 콘퍼런스 지출을 줄이는 등 비싼 겉치레를 없애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워싱턴포스트(WP)는 시퀘스터가 작동된 책임을 오바마 대통령 한 사람에게만 물을 수 없다면서 시퀘스터가 오래갈수록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것은 분명하다고 경고했다. /워싱턴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