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에서 빚 갚아준다는데 일단 버텨보는 거죠." 박근혜 정부가 국민행복기금을 조성, 연체가 높은 채무자들의 빚을 탕감해 준다는 소식에 은행권 연체율이 급등하는 등 부작용이 우려되고 있다. 성실하게 빚을 갚은 채무자들이 역차별을 당한다든가, 일부러 상환을 포기하는 도덕적 해이도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1월 말 은행의 집단대출 연체율은 2.0%로, 관련 통계가 집계된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파트 분양자들이 입주를 앞두고 건설사에 주는 중도금과 이주비 등을 단체로 빌리는 집단대출은 1인당 평균 대출금이 1억5천만원에서 2억원 사이로 대출금 액수가 큰 편이다.

집단대출 잔액이 19조원인 NH농협은행에 따르면, 연체율이 이달 중순 3.5%까지 치솟아 2011년 말 1.4%보다 2.5배나 급등했다.

집단대출 잔액이 가장 많은 국민은행의 경우도 같은 기간 연체율이 2.2%에서 2.9%로 뛰어올랐다.

이렇게 집단대출 연체율이 상승한 데는 집값 하락과 함께 최근 새 정부가 지원할 것으로 알려진 국민행복기금에 대한 기대심리가 높아졌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NH농협은행 관계자는 "일선 창구에서 대출자들이 돈을 안 갚고 버티다 보면 정부에서 해결책이 나올 것이라며 배짱을 부리는 사례가 많다"며 "지금 대출금을 갚으면 정부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이상한 인식이 퍼지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빚을 안 갚는 배짱 채무자 세태는 채권추심업계와 신용불량자(금융채무불이행자)들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신용정보협회와 추심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주요 업체의 채권추심실적이 2011년 대비 20% 이상 감소했다. 통상 채무를 정리하고 싶어 하는 연말심리가 전혀 통하지 않은 것.

은행연합회가 집계한 3개월 이상 채무불이행자는 지난 1월 말 기준 123만9천명이며, 이 중 6개월 이상 채무불이행자는 112만5천명으로 90.8%를 차지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요즘 채무자들의 버티기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며 "국가 경제에 매우 나쁜 선례를 남길 수 있으므로 극히 제한된 범위에서 제도를 시행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지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