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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원춘 사건 1년 후 수원시 팔달구 지동 주택가에는 방범용 CCTV가 확충되는 등 치안여건이 나아지고 있다. /연합뉴스 |
"말도 꺼내지 마세요. 이제 겨우 다 잊어가는데…"
26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지동 주택가.
1년 전 20대 여성을 납치 살해한 '오원춘 사건'이 발생한 이 곳은 여전히 퇴락한 구도심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오원춘(당시 42)은 지난해 4월 1일 오후 10시 30분께 자신의 집 앞에서 귀가하던 A(28·여)씨를 집으로 끌고 가 성폭행하려다 실패하자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했다.
1년이 지난 지금, 치안여건은 개선됐다.
그러나 악화된 동네 이미지 탓에 주민 불만은 여전하고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은 아직 진행되고 있는 등 고통은 아물지 않고 있디.
◇ 낮에도 인적 뜸해…유동인구 감소·고통 여전
거리에서 만난 주민들은 끔찍한 범행을 떠올리고 싶지않은 듯 1년 전 끔직했던 사건에 대해 말을 아꼈다.
주민 A씨는 "이제 겨우 다 잊어가는데 왜 또 들쑤시냐"며 "정작 동네 사람들은 불안한 걸 못 느끼는데 밖에서 보는 이미지 때문에 여기 사는 사람들이 더 피해를 입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거주민들 외에 유동인구가 줄면서 집값은 더 떨어지고, 자영업자들은 장사가 안돼 지난 1년간 '죽은 동네'가 됐다는 게 주민들의 말이다.
인근 초등학교 여교사 B씨는 "이제 아이들이 안정을 찾아가는 분위기인데 언론에서 더 들추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작년엔 (나조차도) 출퇴근하기가 무서웠는데 이젠 거의 잊었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C군은 "작년에 사건 나고나서 지도만들기 수행과제를 하러 친구들과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선생님께 꾸중을 들은 게 기억난다"며 "이제는 부모님도 밖에 나가 노는 걸 뭐라하지 않으시고 친구들도 불안하다고 느끼는 건 없다"고 했다.
인근 부동산중개업소는 다른 동네에서 지동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없어 지난 1년간 영업에 큰 타격을 입었다.
부동산중개인 D씨는 오원춘 사건 탓에 쉰이 넘은 나이에 이직을 준비 중이다.
책상 위에는 '주택관리사 자격시험 문제집'부터 각종 자격증 시험 관련 서적과 진로선택 책들이 수두룩했다.
D씨는 "오죽했으면 이 나이에 직업을 바꾸려 하겠느냐"며 "동네 이미지가 안 좋아 더 영업을 할 수가 없다"고 털어놨다.
◇ CCTV 방범망 확충·112신고시스템 개선 계기
오원춘이 검거되면서 온 국민은 끔찍한 범행에 경악했다.
당시 피해 여성의 다급한 112 신고전화가 7분 넘게 이어졌는데도 경찰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또 한번 큰 충격을 줬다.
경찰은 신고 접수 13시간여 만인 다음날 오전 11시50분께 오원춘의 집에서 심하게 훼손된 피해 여성의 시신을 발견, 초동대처를 소홀히 했다는 비난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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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오후 1년 전 오원춘 사건이 발생한 수원시 팔달구 지동 주택가는 낙후된 구도심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이 사건을 계기로 지역 치안여건은 개선됐지만 사회적 후유증은 여전하다.
1심 재판부는 오씨가 인육을 목적으로 살인했을 의사 또는 목적이 있었다며 사형을 선고했지만 2·3심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무기징역으로 감형했다.
올 1월 형이 확정되자 형량이 낮다는 비판이 일며 납치살인범 오원춘은 다시 한번 국민의 공분을 샀다.
검거 직후 줄곧 우발적 범행이라던 오원춘의 주장은 전봇대 뒤에 숨어 있다가 피해 여성을 끌고 가는 장면이 주변 CCTV에 찍힌 것이 뒤늦게 발견돼 거짓으로 밝혀졌다.
사건 해결의 일등공신으로 새삼 확인된 방범용 CCTV는 이후 경기도 전역에 확대 설치됐다.
2011년까지 1만1천512대이던 도내 방범용 CCTV는 이후 1천600여 대가 늘었다. 27일 현재 1만3천163대가 운영되고 있다.
수원은 1년 새 310대에서 423대로 늘었다.
수원시는 지난해 5월 영통구에 시내 뒷골목 등을 24시간 CCTV로 감시하는 첨단 'U-City 통합센터'를 개설했다.
범죄징후를 포착하는 즉시 순찰차에 영상을 보내 경찰과 공조하는 시스템이다.
도는 올해 말까지 성남 345대, 고양 264대, 안양 260대, 수원 165대 등 모두 4천662대의 방범용 CCTV를 도내 곳곳에 추가 설치할 계획이다.
경찰도 이 사건을 계기로 112 신고 대응의 신속성과 정확도를 높인 표준화된 112신고처리 시스템을 도입, 올해부터 전국 지방청과 경찰서에서 운용하고 있다.
112 신고 접수, 출동, 현장 도착까지 소요시간 관리를 세분화해 더 신속한 출동과 초동조치가 가능하도록 112 신고시스템을 개선했다.
경기지방경찰청은 지난해 4월 483명뿐이던 지방청과 도내 경찰서 112상황실 요원을 사건 발생 이후 170명 증원해 올해 3월 현재 653명으로 늘렸다.
또 권역별 112 전담체제를 구축해 경기남부권을 수원권, 성남권, 안양권, 부천권 등 4개 권역으로 나눠 신속하게 현장 상황을 파악하고 초동 대처하도록 했다.
범죄로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에 상당한 위험이 발생했다고 판단되면 집주인이 거부하더라도 경찰이 강제 진입할 수 있도록 경찰 지침을 신설, 법적 근거도 마련됐다.
◇ 국가 상대 손배소송 유족 '진심어린 사과' 원해
피해 여성의 부모와 언니, 남동생 등 유족 4명은 지난해 8월 국가를 상대로 3억6천여만원을 배상하라는 손해배상 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냈다.
소송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피해 여성의 남동생 A(26)씨는 소송을 통해 '진심어린 사과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건이 마무리되고 우리 가족들이 숨이라도 돌렸을 때 사건처리와 관련이 있는 경찰관들이 직접 찾아와 사과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며 힘겨웠던 1년을 회고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