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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등 성 접대 의혹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인사 10여명에 대한 출국금지를 요청했다. 법무부가 이들에 대한 출금을 받아들이면 김 전 차관 등 10여명의 신분은 참고인에서 피의자로 전환된다. 사진은 이날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 특수수사과 모습. /연합뉴스 |
경찰이 건설업자의 유력인사 성접대 의혹을 수사한 지 17일로 한 달이 다 됐지만 뚜렷한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면서 실체 규명에 난항을 겪고 있다.
경찰은 지난달 건설업자 윤모(52)씨가 유력인사들을 상대로 성접대 등 불법 로비를 하고 그 대가로 사업상 이권을 따냈다는 등의 의혹이 알려지자 같은 달 18일 전격적으로 내사 착수를 발표했다.
여성 사업가 A씨가 윤씨를 성폭행 혐의로 고소한 데서 출발한 이번 사건은 윤씨가 자신의 별장에서 유력인사들에게 성접대를 하고 이를 동영상으로 촬영해 보관했다는 주장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
사안의 성격상 여론의 관심은 성접대가 있었는지, 있었다면 유력 인사들이 등장하는 성접대 동영상이 존재하는지 등 말초적인 부분에 집중됐다.
경찰은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참고인들을 불러 조사하고 고위 인사에 대한 성접대가 있었다는 진술을 확보, 내사 발표 이틀 만에 수사로 전환하는 등 속도를 내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A씨가 제출한 성행위 동영상은 화질이 너무 나빠 등장 인물을 특정할 수 없었고 주요 참고인인 한 여성은 경찰에서는 유력인사를 성접대했다고 밝혔다가 언론 인터뷰에서 말을 뒤집는 등 핵심적인 진술조차 신뢰하기 어려웠다.
의혹이 처음 알려졌을 때 엄청난 관심이 집중된 성접대 동영상 원본은 이후 'CD 7장 분량이다' 'DVD에 저장돼 있다' '윤씨 조카가 웹하드에 보관했다' '음악 CD이다' 등 각종 주장만 난무했을 뿐 실제 존재 여부도 불투명한 실정이다.
유력인사 성접대가 있었음을 증명할 결정적 증거가 발견되지 않고 진술마저 오락가락한다면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이번 의혹은 실명이 거론된 몇몇 인사들에게 상처만을 남긴 채 해프닝 정도로 끝날 가능성이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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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업자 윤모씨의 유력인사 성 접대 의혹에 대해 경찰의 수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26일 오후 강원 원주의 별장 대문이 굳게 닫혀 있다. /연합뉴스 |
경찰은 그러나 성접대는 윤씨의 여러 불법행위 의혹 중 일부일 뿐이라며 윤씨와 유력인사들 간 대가성을 전제로 한 불법행위가 있었는지를 총체적으로 가린다는 목표 아래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경찰은 윤씨가 각종 공사 수주나 인허가 과정에서 이권을 얻으려고 유력인사들에게 대가성 로비를 했는지, 윤씨에 대한 여러 건의 고소 사건이 무혐의 처분되는 과정에서 외압이 있었는지 등을 밝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
수사팀의 역할은 윤씨와 유력인사들 사이에 불법행위가 있었는지를 가려 사법처리 여부를 판단하는 데 있다.
따라서 설령 성접대 사실이 확인되더라도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으면 유력인사들이 '도덕적 지탄'을 받을 수는 있어도 사법적 처벌 대상은 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단순한 '추문'으로 끝나는 셈이어서 경찰로서는 가장 맥빠지는 결과다.
수사팀이 현재 어떤 패를 쥐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핵심 피의자 윤씨를 아직 소환하지 않았다는 점은 윤씨의 혐의 입증이 쉽지 않음을 시사한다.
경찰 내부에서는 국가정보원 여직원 대선개입 의혹 수사 과정에서 경찰이 정권 편향적이었다는 비판을 받은 데 이어 이번 사건까지 소득 없이 끝나면 검·경 수사권 조정 등 현안과 관련한 경찰의 목소리에 힘이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국정원 여직원 사건과 성추문 의혹은 여론의 관심이 집중된 만큼 경찰이 반드시 결과를 내놔야 해 부담이 크다"며 "용두사미로 끝날 경우 수사라인 문책 뿐 아니라 수사권 조정이나 경찰 인력 재배치 등 현안에서 경찰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할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물론 수사팀은 여전히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수사팀의 한 관계자는 "애초 계획한 방향으로 수사가 잘 진행되고 있다"며 "끝나는 시점을 정해두고 수사할 수는 없고 한 달이라는 기간이 여러 의혹을 밝히기에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지만 최대한 신속하게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