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당국이 '회수' 조치를 공표했던 식품에 대해 하루만에 슬그머니 결정을 번복해 소비자와 업계에 혼란을 일으켰다. 알고 보니 '세균이 증식한 불량식품'이 아니라 발효 성분이 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21일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에 따르면 최근 서울시 소속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은 "식품 대기업 A사의 야채수프 제품에서 기준치(1g당 100만개)를 초과한 세균이 나왔다"며 이 제품에 대해 '부적합' 판정을 내리고 이 업체를 관할하는 지방자치단체에 결과를 통보했다.

자치단체는 규정에 따라 이 식품을 '자진 회수'토록 A사에 요구했으며 이런 내용은 제품 사진과 함께 실시간으로 보건당국 회수·부적합 정보 웹사이트에 공개됐다.

그러나 A사는 이 식품에 발효 성분이 들어 있었기 때문에 세균수 기준 적용 대상이 아니라며 이의를 제기했다. 요구르트와 김치 등 발효식품은 유산균 같이 몸에 이로운 미생물이 들어 있기 때문에 세균수 규격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은 이튿날 밤에야 식약처에 부적합 판정 결과를 번복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보건환경연구원 측은 제품 유형이 '발효식품'으로 분류돼 있지 않아 발효 원료 가 함유된 사실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보건환경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발효 성분이 미량만 들어 있어도 세균수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방침을 몰랐다"고 말했다.

긴밀히 협조해야 할 기관끼리 불량식품을 판정하는 기준조차 명확히 공유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식약처 역시 이번 회수 결정의 타당성을 문의하는 민원을 받고도 정확한 사실 관계 파악 없이 자치단체의 답변만으로 "회수 결정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다가 뒤늦게 회수 공지를 삭제했다.

그러나 이 때는 제품 회수 뉴스가 주요 포털을 통해 확산되고 전국 대형마트 계산대에서는 부적합 식품으로 판매가 자동 차단되는 등 브랜드 이미지에 상당한 타격을 입은 뒤였다. 소비자 문의와 항의도 빗발친 것으로 전해졌다.

A사 관계자는 "부적합 판정을 납득할 수 없었지만 일단 행정 지시가 떨어진 이상 제품 회수 절차에 착수할 수밖에 없었다"면서도 더 이상의 말을 아꼈다.

식품업계의 한 관계자는 "소비자 안전과 안심을 위해 '4대악(惡) 부정·불량식품 근절'을 외치는 보건당국이 허술한 행정으로 도리어 소비자의 혼란과 불신을 초래한 사례"라고 꼬집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