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근거 미비와 부처간 업무 영역 등을 이유로 그동안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문제에 소극적이었던 정부가 문제해결에 본격 나선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진영 복지부 장관은 24일 직접 가습기 살균제 피해신고 환자와 가족들을 만날 예정이다.
진 장관은 당일 국회의 추가경정 예산 심사에 출석할 예정이지만 점심 정회 시간에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보건복지위 소속 이언주 의원(민주통합당), 폐손상조사위원회 공동위원장인 백도명 서울대 교수 등과 함께 5~6명의 피해신고자 및 가족과 면담한다.
복지부 관계자는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고통받은 분들의 어려움과 요구 사항을 직접 들어 정부 차원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한 것"이라며 "부처 이해를 떠나 사회적 갈등의 해결을 위해 정부가 노력해야 한다는 장관 의지가 반영됐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앞서 지난 19일에는 총리실 주재로 복지부·환경부·산업통상자원부 기술표준원·식약처 등 관련 부처가 모두 참여한 가운데 첫 가습기 살균제 피해 대책 회의도 열렸다.
그러나 이 같은 정부 움직임이 곧바로 가습기 살균제 피해 신고자들의 요구 사항 수용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작년 11월까지 질병관리본부와 시민단체를 통해 공식 접수된 가습기 살균제에 따른 폐손상 의심 신고 사례는 365건으로, 현재 보건당국은 각 사례의 X-레이·의무기록·설문조사·병리학적 소견 등을 근거로 가습기 살균제와의 연관 정도를 조사하고 있다.
하지만 피해신고자들과 질병관리본부 폐손상조사위원회 민간위원(8명)들은 정부의 보다 적극적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연관성을 정밀하게 밝히기 위해 각 피해 사례에 대해 CT(컴퓨터단층촬영) 등의 영상 진단과 폐기능 검사 등을 지원하고, 추가적 동물 독성실험을 통해 폐질환 원인 물질 중 하나인 CMIT/MIT 등을 원료로 사용한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까지 분명히 입증해달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보건당국은 일단 원인미상 폐질환의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라는 사실을 밝혀냈지만, 더 이상 '감염병예방법'만을 근거로 화학약품에 대한 추가 조사를 주도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환경부도 소관인 환경보건법상 '원료' 물질만 조사할 수 있다며 난색을 보이고 있다. 19일의 1차 가습기 살균제 피해 대책 회의에서도 각 부처들은 이 같은 기본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병율 질병관리본부장은 "현행법에서는 한 부처가 이 문제를 도맡아 해결하는데 한계가 있다"며 "부처간 역할을 명시하고 지원·보상 체계 등을 규정한 새로운 법이 필요한데, 입법까지 시간이 걸리는 만큼 그 사이에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을 부처간 협의를 통해 최대한 찾아볼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1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진보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발의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구제를 위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 결의안은 총리실 총괄 아래 화학물질 사고를 담당하는 환경부와 피해자관리·의료지원을 맡은 복지부가 협의를 통해 가습기 살균제 문제 주무부처를 결정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