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1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의 일본 통화 완화정책에 대한 지지 분위기로 日 증시가 5년래 최고치에 근접하고 있다. 사진은 22일 도쿄의 한 증권사 주식 전광판의 모습. /AP=연합뉴스

엔화 환율이 심리적 마지노선인 달러당 100엔 돌파를 눈앞에 두면서 국내 산업계와 수출전선에 비상등이 켜졌다.

세계시장에서 일본과 치열하게 경합하는 자동차는 이미 수출 감소가 현실화하고 있고 전자 등도 월등히 높아진 가격경쟁력을 무기로 치고 올라오는 일본 경쟁기업들의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그동안 방관적인 태도를 보이던 정부도 엔저가 우리 수출에 미치는 영향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 정부 "엔저 영향 가시화"…대책 부심 = 산업통상자원부는 23일 엔·달러 환율이 100엔에 근접하면서 엔저(低)의 영향이 가시화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가 '가시화'란 표현을 쓴 것은 처음이다.

일본과 치열한 가격경쟁을 벌이는 미국 시장 상황은 우려스러운 수준이다.

대미 수출증가율은 작년 2분기 -1.5%, 3분기 -0.3%로 그럭저럭 현상 유지를 했으나 엔저가 본격화한 작년 4분기에는 -3.4%로 떨어졌고 올해 1분기에는 -4.6%로 하락했다.

일본과 경합하는 품목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대(對) 일본 경합 3대 품목 중 하나인 일반기계는 2012년 2분기 수출증가율 9.2%, 3분기 2.7%에서 4분기와 올해 1분기에는 각각 -3.6%, -2.6%로 떨어졌다.

기계부문은 국산과 일본산의 가격격차가 10~20%에서 최근에는 5~10%까지 좁혀진 것으로 산업부는 파악했다.

자동차도 작년 2분기 6.2%의 수출증가율을 보였던 것이 3분기에는 -10.2%로 급락했고 4분기와 올 1분기에는 각각 -3.1%와 -3.6%로 고전하고 있다.

철강도 작년 2분기 3.3%에서 3분기엔 -14.8%, 4분기 -9.3%, 올해 1분기 -10.6%로 수출증가율이 곤두박질 친 상황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 1∼2월 세계시장에서 일본과 치열하게 경쟁하는 49개 수출품 가운데 절반인 24개 품목이 전년 동기 대비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 가운데 21개 품목은 작년 플러스 수출증가율을 보이다 올해 마이너스로 급락한 경우다. 작년에 비해 수출증가율이 크데 둔화한 품목도 10개에 달했다.

산업통산자원부 관계자는 "일본과 경합하는 주요 수출품목에서 눈에 띄는 하향세가 나타나고 있다"며 "단기적으로 무역보험공사를 통해 기업들의 환위험 대응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4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수출 선적부두에 수출용 승용차가 선적을 기다리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최근 미국에 이어 국내에서도 리콜을 단행했다. /연합뉴스

◇ 주력 수출업종 수출 차질 현실화 = 한·일 산업계에서 엔저에 따른 희비가 극명하게 나타나는 업종은 자동차다.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승승장구하던 현대자동차는 올해 1∼3월 판매성장률이 작년 같은 기간 대비 0%로 답보 상태를 보였고, 기아차는 8%나 감소했다.

반대로 일본의 도요타는 같은 기간 9%, 혼다는 5% 각각 판매량을 늘렸다.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는 작년 12월 낸 보고서에서 원-엔 환율이 10% 하락하면 한국 자동차 수출액이 12%가량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를 2011년 기준 수출액(453억1천200만달러)으로 환산하면 54억3천700만달러, 한화로는 약 6조894억원이 줄어드는 셈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현대·기아차는 해외 판매의 비중이 80%가 넘는 데다 주요 시장마다 도요타, 혼다와 경쟁하고 있어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전했다.

한국GM 관계자도 "생산 물량의 80% 이상을 수출하는 상황이어서 해외에서 일본차와의 경쟁이 격화될 것으로 우려된다"며 "GM 본사와의 긴밀한 공조로 대응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철강업계도 가격경쟁력을 등에 업은 일본 제품의 시장 잠식을 우려하고 있다.

수출 비중이 40%에 달하는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은 특히 주력 수출시장인 동남아에서 일본 제품과의 힘겨운 싸움을 예상한다.

전자업계는 엔저 영향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한국산의 가격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복득규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은 "단기적으로는 엔저의 영향이 자동차·기계·정유 등 수출비중이 높은 업종에 국한되겠지만 중장기화하면 영향을 안받는 산업이 거의 없을 것"이라며 "이것이 특히 우려스러운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 수출 중소기업 '엔저'에 무방비 노출 = 환율 변동성 확대에 어느 정도 대비를 해온 대기업과 달리 중소 수출기업은 사실상 '무장해제' 상태에 놓여있다.

이는 수십년간 힘겹게 뚫어놓은 거래선 동요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한 상사 주재원은 "기계부품의 경우 엔저를 등에 업은 일본 업체들의 가격 공세가 심화하고 있다"며 "일반적으로 일본 제품을 선호하는 바이어들로서는 충분히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프랑스의 한 식품 바이어도 엔화 약세와 유로화 강세로 일본산 수입 간장 가격이 하락하고 있어 한국산 수요가 둔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무역협회 조사에 따르면 엔저 등 환율 변동성 확대로 수출 중소기업의 45%가 수출 상담과 계약에 차질을 빚었으며 20%는 채산성 악화로 수출을 포기했다고 답했다.

일본으로 수출한다는 한 중소기업 대표는 "원화 절상에다 엔저까지 겹쳐 수익률이 20% 이상 낮아진 상태"라며 "환헤지 등 선제 대응을 하고 싶어도 비용이 많이 들어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털어놨다.

한 자동차부품업체 대표도 "1%의 가격 차로 수주 여부가 갈리는 제품 특성상 환율문제가 장기화하면 경영이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정부가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해 불확실성을 해소해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