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가 33주년 5·18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공식 식순에 넣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한 데 이어 5·18 관련 공모전 수상작 교체요청까지 해 물의를 빚고 있다.

5·18의 상징인 '임을 위한 행진곡'을 배척하고 군인이 쏜 총에 맞아 피를 흘리는 시민을 묘사한 수상작을 "5·18 정신에 어긋난다"고 한 보훈처의 행보를 놓고 정부가 5·18 역사 지우기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서울지방보훈청은 지난 3일 5·18 민중항쟁 서울기념사업회가 주관한 공모전 수상작 일부 교체를 요청했다가 반발 여론이 일자 '자문' 차원이었다며 발을 뺐다.

지난해에도 수상작 '29만원 할아버지'를 문제삼았던 서울보훈청은 시에 쓰인 '피 냄새', '총성'이라는 단어와 그림에 표현된 군인이 쏜 총에 맞아 피흘리는 시민의 모습을 문제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 2일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은 광주지방합동청사에서 5·18 기념식 식순에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포함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예년과 같이 하는 것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해 예년처럼 공식 식순에서 제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박 처장은 이날 "'임을 위한 행진곡'은 많은 의견이 있다"며 "다른 의견들이 있으니까 정부가 (식순 포함을) 추진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보훈처의 태도에 대해 5·18 기념재단과 관련 단체들은 정부가 이미 검증된 역사를 부정하고 흔적을 지우려 한다며 "민주화운동 역사의 역주행 사태"라고 비판했다.

보훈처는 그동안 5·18 관련 단체들에 '곡이 시대와 맞지 않다', '특정 정당이 당가처럼 부르는 노래라 국가행사에 부적절하다', 한쪽 진영의 일방적인 의견만 드러내고 있다'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기념식에서 배척해왔다.

보훈처는 지난 2009년과 2010년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공식행사에서 제외하고 식전행사에 배치했으며 2011년과 2012년에도 폐막 전 제창이 아닌 연주나 합창단 공연으로 대체해 '꼼수' 지적을 받아왔다.

또한 2006년과 2009년 공식 추모곡 국민공모를 시도했다가 반발여론에 막혀 무산되자 지난해 말 또다시 4천800만원의 관련 예산을 편성해 새 추모곡 지정을 추진 중이다.

보훈처가 기념식 참가자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부르며 부당한 권력에 항거하고 민주화를 위해 희생한 5·18 정신을 기리는 것을 꺼리고 노래 자체를 기념식에서 지우려 하는 것에 대해 각계에서는 정치적 의도가 깔렸다고 비판하고 있다.

기념식을 불과 2주 앞두고 식순에 대해 계속 검토만 하고 있다는 보훈처의 해명 역시 직무유기 또는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려는 속임수에 불과하다는 견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의 작곡가 김종률(55)씨는 5일 "특정 정당·개인이 불렀다고 해서 그들의 노래는 아니며 그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먼저 가신 분들의 용기에 대한 존경의 노래"라며 새 추모곡이 필요하다는 보훈처의 변명이 옹색하다고 지적했다.

5·18 단체의 한 관계자는 "역대 대통령들은 5·18 기념식에서 성숙한 민주주의를 위해 화합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며 "박근혜 대통령 역시 대통합을 내세우고 있는데 말로만 그치지 말고 역사 왜곡을 통한 분열 조장 행태부터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