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방미중 윤창중 대변인 경질 부른 '성추행 의혹'
국민에 기대 대신 상실… 귀국길 기자도 무거운 마음

박대통령-상하원 합동회의 연설문 배포시간 미공지
연설문 윤대변인 아닌 선임 행정관 손에 '이상 감지'

수행단 "본대와 움직여" 답변 불구 "이건 사고" 확신
행방묘연·LA전용기 미탑승·사고설 제하의 기사 특종



 
 
▲ 9일 '윤창중 스캔들' 기사를 특종보도한 경인일보 정의종 기자. /경인일보DB
10일 오후 6시 35분 박근혜 대통령의 첫 미국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대통령 전용기가 성남 비행장에 내렸다.

트랙을 밟고 내려오는 기자의 마음은 천근만근 같이 무거웠다.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일정 중 '부적절'행위로 전격 경질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사실을 세상에 알려지게 한 단초를 쓴 장본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첫 방미 성과를 화제로 온 국민이 기대와 희망을 가져야 할 시간, 저급한 성 추행 사건에 묻혀 상실감에 빠질 국민들의 허탈감을 지울 수 없었기에 더 그랬다.

성남 공항 활주로를 내리는 비행기 착륙 소리보다 수 백통의 문자와 카톡, 그리고 더 정확한 사실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걸려오는 핸드폰 진동 소리는 나의 마음을 더 무겁게 했다.

13시간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잊혀졌던 악몽이 다시 현실로 다가오는 시간이었다.

기자가 제1보를 쓰게된 계기는 지난 8일 오전 7시 30분(미국 현지시간).

오전 10시부터 예정된 박 대통령의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문 배포 시간이 공지 되지 않고, 연설문을 들고 나온 사람도 윤 전 대변인이 아닌 대변인실의 한 선임 행정관이었기 때문이다. 느낌이 이상했다.

미리 자료 배포 시간을 공지하고, 대변인이 브리핑하는게 이번 방미 기자단의 관례였다. 그러나 이날은 미리 자료 배포 시간도 알려주지 않고, 거기에 선임행정관이 허겁지겁 달려와 자료만 돌리고 부연 설명도 길지 않았다.

기자들은 대체로 마감시간에 임박해 윤 대변인의 행방보다는 연설문의 핵심을 파악하는데 정신이 더 빠졌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20분짜리 발언록을 200자 원고 3~4장으로 압축해야 하는 과정에서 윤 전대변인의 행방쯤은 크게 문제 될 상황이 아니었다.
 
그 시간은 윤 전 대변인은 인생에 씻을 수 없는 과오를 저지르고 수습단계에 있었을 터.
 
그런 과정에서 방미 수행단은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과 미상의 주최 오찬 라운드테이블 등 몇 가지 행사를 마치고 LA로 향했다.

오후 3시 워싱턴D.C발 전용기는  그렇게 떠났다.

문제는 이 때였다. 전용기에 조차 윤 전대변인은 보이지 않았다. 알게 모르게 터득한 20년 노하우로 확인 해본 결과 전용기에는 윤 전대변인이 타지 않았다. 전용기에 마련된 좌석은 비어있었고, 분위기는 지금까지 모습과 조금 달랐다.

이건 사고다. 수행단 관계자들에게 윤 전대변인의 행방을 물었다.

한 관계자는 "본대(VIP)와 같이 움직인다"고 했고, 또 다른 관계자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말로는 속일수 있을지 몰라도, 기자의 눈을 속일수는 없었다. 저녁식사 시간 즈음에 윤 전대변인이 비행기를 타지 않았다는 사실을 최종적으로 확인했다. 귀국설도 함께 흘러 다녔다.  

 
 
▲ 지난 8일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모습을 볼 수 없었던 워싱턴 D.C 페어팩스 호텔의 프레스센터 모습. /정의종 기자
하루 동안 미심쩍은 일련의 과정을 접하면서 "이건 사고"라는 직감이 생겼고, 곧바로 프레스센터가 마련된 멀티모어 호텔로 들어가 송고를 마쳤다. 전용기에 타지 않은 사실과 귀국설이 있었으나 귀국사실에 대해서는 더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윤 전대변인이 전용기에 타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렇게 세상에 알려졌다. 방미 수행단으로 대통령의 입으로 활약하는 이가 확실한 설명 없이 전용기를 타지 않았다는 것은 사고가 아닐 수 없었다.

'뭔가 중대한 사고가 있다'는 판단으로 9일 오후 9시 46분 경인일보 홈페이지에 "꼭꼭 숨은 윤창중 '무슨 일?' "제하의 1보 기사가 나갔다.

'막바지 이틀간 행방 묘연' 'LA전용기 탑승안해' '끝내 안보여 사고설 돌아' 등의 부제의 경인일보 기사는 5분여쯤 뒤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를 통해 인터넷으로 확산되기 시작했고, 파장은 일파만파로 퍼졌다.
 
새벽시간(현지) 잠자리에 들었던 방미 기자들은 서울에서 연락을 받고 다급하게 경인일보 보도의 확인 취재에 돌입, 2~3시간 이후인 오후 11시 이후 윤대변인의 급거 귀국사실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소식은 미국 교포사회에서 SNS를 통해 급속히 전파되기도 했고, 방미 기자단은 경인일보에 사실관계를 확인하기도 했다.
 
이후 이남기 홍보수석은 긴급 회의를 소집,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전격 경질 사실을 발표했다.

박 대통령은 이 수석에게 보고를 받고 미동도 않은 무거운 표정으로 단호하게 "경질하세요"라고 했다고 한다. 

가히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던 박 대통령의 첫 방미 일정을 쫓으며 밤 잠을 설쳤던 방미 수행기자들은 고생한 만큼 나름의 보람을 가졌지만 예상치 못한 윤창중 스캔들로 무거운 마음을 지울 수 없었을 것이다. 본 기자도 그들의 마음을 잘 알고, 보도이후의 파장을 느낄 수 있었기에 한참을 고민했고, 방송사의 한 후배기자와 이를 두고 의견을 구하기도 했었다.

마음이 무겁기는 방미단 모두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아니 가장 무거운 사람은 박 대통령 본인일 거다. 첫 방미 순방에 기대를 걸었던 국민들에게 뭔가 새롭게 시작하자는 메시지와 동력을 불어 넣으려 했던 꿈은 윤창중 스캔들로 날아가버렸다. 누구 보다 더 가벼운 마음으로 국민들의 박수를 받고 귀국길에 올라서야 할 그는 귀국길 전용기안에서 기자들과 기쁨을 나누려 했던 간담회조차 취소했다.

/정의종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