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海瓚 최고위원은 기획과 정책분야에 밝고 아이디어가 풍부한 '기획통'의 재야출신 4선의원.
 지난 88년 광주청문회 당시 '면도칼 질문'으로 청문회 스타로 떠올랐고, 환경노동위 등 국회 상임위에서 두드러진 의정활동을 보여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87년 대선을 앞두고 평민연에 가입, 金大中대통령 편에 섰으나 91년 지방선거 당시 공천잡음이 일자 한때 평민당을 탈당하기도 한 소신파.
 논리적이지만 다소 독선적이어서 '국민의 정부' 초대 교육장관시절 교원정년단축을 강행, 교육계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