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중환자실에는 의학적으로 더는 회복할 가망이 없지만, 각종 연명치료의 도움을 받아 근근이 생명을 연장하는 말기환자가 꽤 된다.
환자 자신은 의식조차 없는 식물인간 상태에서 인공호흡기로 겨우 연명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고도로 발달한 현대 의학 기술 덕분이다. 보건복지부는 이런 회복 불능의 말기환자가 중환자실에 전국적으로 1천200여명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목숨만 부지하는 환자도 힘들지만 이를 지켜보는 가족과 의료진의 마음도 아프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가족과 좋은 기억을 나누며 삶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마무리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며 안타까움을 표출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의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를 두고 생명연장이라기보다 삶을 멈추는 시기를 약간 늦출 뿐이라며 회의적으로 바라본다. 그러면서 존엄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는 길을 터줘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웰다잉(Well-Dying) 현실화될까…연명치료 중단 입법화 작업 본격화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의료문화를 바꿀 제도적 장치가 구체적인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더는 나을 가능성이 없는 말기환자가 자신이나 가족의 결정으로 존엄하게 생을 마감하는 길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입법화 작업이 가시화하고 있다.
20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대통령직속 자문기구인 국가생명윤리위원회 산하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제도화 특별위원회'가 최근 5차 회의에서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권고안을 만들며 입법화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에 따르면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대상은 회생 가능성이 없고 원인 치료에 반응하지 않으며 급속도로 임종(臨終) 단계에 접어든 임종기(dying process) 환자다. 이런 의학적 상태는 의사 2인 이상의 확인을 거쳐야 한다. 중단하는 치료는 심폐소생술·인공호흡기·혈액 투석·항암제 등이다. 다만, 환자의 통증은 계속 조절해야 하고, 영양과 물, 산소도 계속 공급해야 한다.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은 원칙적으로 환자 자신이 뚜렷한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관련 절차에 따라 연명치료를 원치 않는다고 명시적으로 밝힌 경우에만 허용된다. 환자는 생전에 '사전의료의향서(AD; Advanced Directives)'와 '연명 의료계획서(POLST; Physician Orders for Life-Sustaining Treatment)'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명시적으로 표시할 수 있다.
사전의료의향서는 환자 자신이 의식이 있을 때 연명치료 중단 뜻을 담아 미리 작성해 두는 '사전 유언(living will)' 형식이다. 연명 의료계획서는 의사가 임종이 임박한 중환자에게 상황을 충분히 설명하고 협의해서 작성한다.
명시적 의사 표시가 불가능한 환자에 대한 연명치료 중단 여부는 두 가지 경우로 나눠서 결정한다. 환자의 평소 가치관과 발언을 토대로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 가족 2인이 환자의 평소 뜻에 대해 일치하는 진술을 하면 환자의 추정 의사를 인정하기로 했다.
문제는 평소 환자의 의사를 확인하기 불분명한 경우다. 이때에는 배우자와 직계 존비속(부모와 자식) 등 가족 '전원'이 합의하고 의료인 2인이 동의할 때만 가족이 환자를 대신해 환자의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 까다로운 조건을 걸긴 했지만 가족의 대리 결정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자식 중에서 연락이 닿지 않거나 논의를 거부하면 제외하기로 했다.
연명치료 중단 대상 환자가 미성년자일 때는 부모 등의 적법한 대리인이 결정하고, 대리인이 없으면 병원윤리위원회에서 결정할 수 있다.
특별위원회는 29일 공청회를 열어 전문가 의견을 듣는 등 여론수렴 절차를 거쳐 국가생명윤리위원회에 정식 안건으로 제출할 예정이다. 국가생명윤리위원회는 6월말까지 이 안을 확정해 연명치료 중단에 필요한 법제화 작업에 착수하도록 복지부에 권고할 계획이다.
우리 사회가 생명에 대한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근거해 웰다잉(Well-Dying)할 수 있는 입법화의 큰 발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의료현장 요구 거세지만 현실 녹록지 않아…종교계 반대
사실 의료현장과 국민 사이에서는 말기환자를 대상으로 시행하는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해야 한다는 요구가 대세다.
국립암센터가 국내 17개 병원 암환자 1천242명과 가족 1천289명, 암전문의 303명, 일반인 1천6명을 대상으로 2011년 5월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암환자의 89.9%, 가족의 87.1%, 암전문의의 94.0%, 일반인 89.8%가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환자 자신이나 가족은 무의미한 연명치료로 고통을 더는 연장하고 싶지 않다고 외친다. 그렇지만 의료진은 법적 근거가 없는 상태에서 당장 치료를 중단하면 형사처분의 대상이 될 수 있기에 방어적 자세로 연명치료를 계속하는 상황이다.
이로 말미암아 육체적, 정신적 고통도 고통이지만 일반 환자의 14배 정도 되는 말기환자의 의료비 부담 때문에 가계 경제는 파탄 직전의 궁지로 몰리기도 한다.
국립암센터 연구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암 사망자 중 30%는 사망 1개월 전까지 항암화학요법을 받았다. 사망이 임박할수록 의료처치는 더욱 많아졌다. 이 때문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분석결과, 말기 암환자가 사망 전 2개월간 쓰는 진료비는 연간 총 진료비의 절반에 달했다.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제도화를 어렵게 하는 데는 적극적 안락사나 의사 조력 자살 등의 오·남용에 대한 우려가 남아있는 점도 한몫한다.
가족이 경제적 문제로 치료비를 더는 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환자 치료 중단을 요구함으로써 자칫 생명을 앞당길 수 있고, 의료진이 판단 착오로 잘못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종교계에선 우리 사회에 생명경시 풍조가 퍼지지는 않을지 우려하며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권고안을 내놓은 특별위원회에 참석한 가톨릭계 위원은 환자 뜻을 추정해서 판단하고 가족이 환자를 대신해 대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인정하는 데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는 자칫 안락사를 의도하는 것으로 오해하기 쉬운 연명치료 중단을 서둘러 제도화하는 것은 시기상조이며 위험하기까지 하다는 의견을 고수하고 있다.
종교계를 설득하고 악용 소지를 철저하게 차단하면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지 않고서는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법제화의 앞길이 순탄치 않을 것이란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실제로 지난 18대 국회에서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신상진 의원과 김세연 의원이 존엄사를 담은 관련 법안 두 개를 발의했지만,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채 국회 본회의 문턱에조차 가지 못하고 폐기됐다. /연합뉴스
환자 자신은 의식조차 없는 식물인간 상태에서 인공호흡기로 겨우 연명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고도로 발달한 현대 의학 기술 덕분이다. 보건복지부는 이런 회복 불능의 말기환자가 중환자실에 전국적으로 1천200여명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목숨만 부지하는 환자도 힘들지만 이를 지켜보는 가족과 의료진의 마음도 아프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가족과 좋은 기억을 나누며 삶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마무리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며 안타까움을 표출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의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를 두고 생명연장이라기보다 삶을 멈추는 시기를 약간 늦출 뿐이라며 회의적으로 바라본다. 그러면서 존엄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는 길을 터줘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웰다잉(Well-Dying) 현실화될까…연명치료 중단 입법화 작업 본격화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의료문화를 바꿀 제도적 장치가 구체적인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더는 나을 가능성이 없는 말기환자가 자신이나 가족의 결정으로 존엄하게 생을 마감하는 길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입법화 작업이 가시화하고 있다.
20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대통령직속 자문기구인 국가생명윤리위원회 산하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제도화 특별위원회'가 최근 5차 회의에서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권고안을 만들며 입법화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에 따르면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대상은 회생 가능성이 없고 원인 치료에 반응하지 않으며 급속도로 임종(臨終) 단계에 접어든 임종기(dying process) 환자다. 이런 의학적 상태는 의사 2인 이상의 확인을 거쳐야 한다. 중단하는 치료는 심폐소생술·인공호흡기·혈액 투석·항암제 등이다. 다만, 환자의 통증은 계속 조절해야 하고, 영양과 물, 산소도 계속 공급해야 한다.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은 원칙적으로 환자 자신이 뚜렷한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관련 절차에 따라 연명치료를 원치 않는다고 명시적으로 밝힌 경우에만 허용된다. 환자는 생전에 '사전의료의향서(AD; Advanced Directives)'와 '연명 의료계획서(POLST; Physician Orders for Life-Sustaining Treatment)'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명시적으로 표시할 수 있다.
사전의료의향서는 환자 자신이 의식이 있을 때 연명치료 중단 뜻을 담아 미리 작성해 두는 '사전 유언(living will)' 형식이다. 연명 의료계획서는 의사가 임종이 임박한 중환자에게 상황을 충분히 설명하고 협의해서 작성한다.
명시적 의사 표시가 불가능한 환자에 대한 연명치료 중단 여부는 두 가지 경우로 나눠서 결정한다. 환자의 평소 가치관과 발언을 토대로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 가족 2인이 환자의 평소 뜻에 대해 일치하는 진술을 하면 환자의 추정 의사를 인정하기로 했다.
문제는 평소 환자의 의사를 확인하기 불분명한 경우다. 이때에는 배우자와 직계 존비속(부모와 자식) 등 가족 '전원'이 합의하고 의료인 2인이 동의할 때만 가족이 환자를 대신해 환자의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 까다로운 조건을 걸긴 했지만 가족의 대리 결정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자식 중에서 연락이 닿지 않거나 논의를 거부하면 제외하기로 했다.
연명치료 중단 대상 환자가 미성년자일 때는 부모 등의 적법한 대리인이 결정하고, 대리인이 없으면 병원윤리위원회에서 결정할 수 있다.
특별위원회는 29일 공청회를 열어 전문가 의견을 듣는 등 여론수렴 절차를 거쳐 국가생명윤리위원회에 정식 안건으로 제출할 예정이다. 국가생명윤리위원회는 6월말까지 이 안을 확정해 연명치료 중단에 필요한 법제화 작업에 착수하도록 복지부에 권고할 계획이다.
우리 사회가 생명에 대한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근거해 웰다잉(Well-Dying)할 수 있는 입법화의 큰 발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의료현장 요구 거세지만 현실 녹록지 않아…종교계 반대
사실 의료현장과 국민 사이에서는 말기환자를 대상으로 시행하는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해야 한다는 요구가 대세다.
국립암센터가 국내 17개 병원 암환자 1천242명과 가족 1천289명, 암전문의 303명, 일반인 1천6명을 대상으로 2011년 5월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암환자의 89.9%, 가족의 87.1%, 암전문의의 94.0%, 일반인 89.8%가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환자 자신이나 가족은 무의미한 연명치료로 고통을 더는 연장하고 싶지 않다고 외친다. 그렇지만 의료진은 법적 근거가 없는 상태에서 당장 치료를 중단하면 형사처분의 대상이 될 수 있기에 방어적 자세로 연명치료를 계속하는 상황이다.
이로 말미암아 육체적, 정신적 고통도 고통이지만 일반 환자의 14배 정도 되는 말기환자의 의료비 부담 때문에 가계 경제는 파탄 직전의 궁지로 몰리기도 한다.
국립암센터 연구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암 사망자 중 30%는 사망 1개월 전까지 항암화학요법을 받았다. 사망이 임박할수록 의료처치는 더욱 많아졌다. 이 때문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분석결과, 말기 암환자가 사망 전 2개월간 쓰는 진료비는 연간 총 진료비의 절반에 달했다.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제도화를 어렵게 하는 데는 적극적 안락사나 의사 조력 자살 등의 오·남용에 대한 우려가 남아있는 점도 한몫한다.
가족이 경제적 문제로 치료비를 더는 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환자 치료 중단을 요구함으로써 자칫 생명을 앞당길 수 있고, 의료진이 판단 착오로 잘못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종교계에선 우리 사회에 생명경시 풍조가 퍼지지는 않을지 우려하며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권고안을 내놓은 특별위원회에 참석한 가톨릭계 위원은 환자 뜻을 추정해서 판단하고 가족이 환자를 대신해 대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인정하는 데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는 자칫 안락사를 의도하는 것으로 오해하기 쉬운 연명치료 중단을 서둘러 제도화하는 것은 시기상조이며 위험하기까지 하다는 의견을 고수하고 있다.
종교계를 설득하고 악용 소지를 철저하게 차단하면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지 않고서는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법제화의 앞길이 순탄치 않을 것이란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실제로 지난 18대 국회에서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신상진 의원과 김세연 의원이 존엄사를 담은 관련 법안 두 개를 발의했지만,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채 국회 본회의 문턱에조차 가지 못하고 폐기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