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행 완강히 거부" 변명
CU직원에 119 신고만 지시
약사조차 적극적 제재안해
"한사람이라도 말렸으면…"


경찰을 비롯, 주변사람들의 안일한 대처가 한 생명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용인시 기흥구에서 CU 편의점을 운영하던 김모(53)씨가 인근 약국에서 수면유도제를 40알이나 삼킬 동안 그를 제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재빨리 병원으로 옮기지도 않았다.

지난 16일 오후 6시30분께 김씨와 CU 직원 정모씨는 술자리에서 편의점 계약해지 문제를 놓고 승강이를 벌였다. 편의점 매출부진이 극심했던 김씨는 하루라도 빨리 계약해지를 해 달라고 정씨에게 요구했지만, 정씨는 "유예기간이 있어 2개월 정도 걸린다"며 계약해지가 더뎌질 수 있음을 암시했다.

이에 참다 못한 김씨는 정씨와 함께 인근 약국을 찾아 수면유도제 4통(40알)을 구입했고, 이 중 10알을 털어넣었다. 약국까지 함께 따라간 정씨는 물론 수면유도제를 판 약사도 김씨를 말리지 못했다.

상황이 심각하다고 느낀 정씨는 오후 6시50분께 약국과 50여m 떨어진 흥덕파출소를 찾아 신고했고, 곧바로 2명의 경찰관이 김씨가 있는 약국에 도착했다.

하지만 경찰이 도착했을 때 김씨는 이미 약국 내에서 모두 40여알의 수면유도제를 복용한 상태였다. 김씨에게 수면유도제를 판매한 약사는 "(수면유도제를) 다량 복용해선 안 된다고 주의를 줬지만 김씨가 막무가내로 입에 넣었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게다가 약국에 도착했던 경찰들은 김씨가 다량의 수면유도제를 먹은 상황을 인지했음에도, 119 신고 등 응급조치를 하지 않았다. 대신 CU 직원 정씨에게 "119에 신고하라"는 말만 남긴 채 돌아갔다. 김씨가 병원 이송을 완강히 거부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

결국 김씨는 귀가중에 우연히 이 장면을 목격한 김씨의 친구 A씨에 의해 인근 대학병원으로 옮겨졌다. A씨가 정씨와 김씨를 승용차에 태워 병원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7시35분. 병원에서 곧바로 위세척을 받고 안정을 취하던 김씨는 다음날인 17일 오전 10시5분께 사망했다.

이 병원 관계자는 "고인의 직접적인 사망원인은 심근경색이지만, 수면유도제를 40알 이상 복용했을 경우 몸에 아무 이상이 없었다고 보기 어렵다. 환자의 병력이나 몸상태에 따라 다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했다.

유가족측은 김씨의 사망에 대해 "옆에 있던 단 한 사람이라도 (고인의) 약 복용을 제대로 말렸다면 돌아가시지는 않았을 텐데 너무나 안타깝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황성규·윤수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