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우영 사회부장
갑의 그물망 걸려 적자에 허덕이던 '을의 죽음'
사건 덮으려는 BGF리테일 비윤리적·비인간적
고개숙이며 "변해보겠다"는 갑, 위선이 아니길


경인일보가 단독보도한 용인 CU 편의점 운영자 자살사건의 지진파가 거세다. 남녀노소를 불문한 자살사건이 하루가 멀다하고 벌어지는 세상이다. 이런 맥락에선 편의점 운영자 자살도 그중 한건일 뿐이다. 그러나 지금 전국이 요동치고 있다. 왜일까. 먹고 살기 위해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 봤을 법한 게 편의점 운영이다. 그 편의점이 적자에 허덕인다는 사실, 또 벗어날 수 없는 갑의 그물망이 쳐져 있다는 충격 때문 아닐까. 그리고 '어떻길래 자살까지'라는 의구심이 풀리기도 전에 저지른 CU본사의 비열함에 공분하기 때문일 것이다.

CU 본사인 BGF 리테일은 김씨의 사망이후 보상·장례문제 등을 속전속결로 해치웠다. 마치 사고를 대비한 매뉴얼이 있는 것처럼. 계약금 반환·위약금 면제·위로금 지급·장례비 전액 지급→ 언론에 절대 노출하지 않는다는 확인서 작성 → 언론에 알려질 것에 대비한 사망진단서 확보 → 보도자료 배포 등 일사천리의 수순이었다. 그러나 이 단계들중 어느 하나도 진정성은 없었다. 아니, 입만 열면 거짓이었다.

도의적 책임을 지기 위해 좋은 조건으로 보상했다는 BGF 리테일의 설명은 김씨의 사망 사실을 덮으려는 '확인서'가 공개되면서 입막음용이었음이 드러났다. 사망진단서를 입수해 '항히스타민 제 중독'이라는 의사소견을 삭제, 변조한 뒤 유족들의 동의도 없이 언론에 배포했다. 야비하게도, 김씨의 사인을 편의점 영업과는 무관한, 심근경색으로만 몰아가려 했다. '월 460만원 가량 순이익이 나는 우량 점포였다'는 설명은 김씨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에서 '또 310만원 적자'라는 본사 직원과의 대화로 거짓임이 밝혀졌다. 김씨에게 '폐점이 1주일 걸린다'며 폐점을 논의했다는 해명도, "사고 당일 사장님이 '영업을 6개월이나 더 하라는게 말이 되냐'고 언성을 높이자 대답 못하며 쩔쩔매는 본사 직원의 모습을 똑똑히 봤다"는 알바 여직원의 증언을 통해 비겁한 변명으로 드러났다. 더구나 경인일보의 첫 기사가 보도된 21일 오전, BGF 리테일은 'CU, 점주 소통 강화 및 교육프로그램 확대 시행'이라는 대단치도 않은 보도자료를 뿌려 온라인을 도배질하면서 김씨의 사망보도를 후순위로 밀어내며 얄팍한 술수의 정점을 찍었다. 사람 한명의 목숨따위는 아랑곳 않는 비윤리적 행태의 극치였다.

대기업들이 갑이 돼 무한경쟁을 벌이고 있는 편의점업계는 감춰진 '족쇄'를 기반으로 생존하고 있음이 이번 사건으로 드러났다. 브랜드 내주고, 물건 줄테니 너희는 들어와 열심히 팔기만 해라. 얼마나 손쉬운 사업이냐며 점주들을 끌어 모은다. 사업 노하우 없고, 일 벌이기엔 겁나는 자본없는 서민들, 은퇴자들은 예상매출액을 귀띔조차 받지 못한 채 제법 수익이 난다는 말에 너도나도 편의점 운영에 뛰어들었다. 장사를 하다보니 주변에 깔린 게 편의점이다. 반경 50m내에서 수십개의 편의점이 경쟁하는 아귀다툼의 소굴이었다. 간신히 매출을 올려봐야 순이익은 매출의 30%선. 이 순익에서 60~70%를 본사가 먼저 떼어간다. 이어 전기요금, 상품폐기손실, 신용카드 수수료·영업잡비, 미판매소실액, 소모품비가 빠진다. 얼마남지 않은 순익에서 아르바이트비와 포인트 적립금마저 빠져 나가면 점주가 손에 쥐는 돈은 일용직만도 못하다. 여기에다 하루 24시간, 1년 365일 꼬박 영업해야 한다. 그만 두려니 폐점 위약금이 수천만원이다. 섣불리 '종속계약'에 사인한 점주들이 나중에 확인하게 되는 것은 평생 빠져 나가기 힘든 '족쇄'에 걸렸다는 것 뿐이었다.

명명백백한 증거와 증언을 경인일보가 연일 보도하자, BGF 리테일의 간부와 직원이 본사를 찾아 왔다. 그들은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 솔직히 사안을 덮고 싶었다"고 실토하며 울먹였다. 이어 "이번 일을 계기로 CU가 변할테니, 조금만 참고 지켜봐 달라"고 했다. 그러나 그들이 사과하고 해명하는 내내 귓전을 계속 때린 것은 방경수 전국편의점가맹사업자단체협의회 회장이 CU사태로 기자회견을 열면서 토해 낸 울분이었다. "편의점 가맹점주들은 악덕지주에 착취당하는 현대판 소작농일 뿐입니다."

/최우영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