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의 돈 흐름에 이상징후가 감지되고 있다. 은행의 예금회전율이 지난 2, 3월 두 달 연속 낮은 수준을 유지한 것이다. 예금회전율은 예금인출횟수를 뜻하는 것으로 이 수치가 낮다는 것은 그만큼 화폐의 유통속도가 느리다는 의미이다. 주식시장에서도 거래가 줄면서 주식회전율은 2011년 7월 이후 가장 낮은 실정이다.

그만큼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다는 방증이다. 덕분에 단기부동자금은 눈덩이처럼 불어 675조8천억원에 이르는 등 사상 최고를 기록 중이다. 자금은 넘쳐남에도 산업현장에서는 돈가뭄에 시달리는 등 '돈맥경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자금흐름의 왜곡을 해소하고자 정부는 '4·1부동산대책'을 강구했다. 그러나 최근 주택 매매가가 다시 하락세로 돌아서는 등 효과가 미미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또한 5월 9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전격 인하했으나 요구불예금과 수시입출금식 저축성예금 등은 사상최대치를 경신했다.

유동성 함정을 간과한 어설픈 정책대응이 오히려 부동자금 덩치를 키우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자금의 단기부동화는 은행수지에도 부정적이다.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 강화는 또 다른 질곡이어서 화폐퇴장 심화까지 우려되는 형편이다. 미국, 일본, 유럽의 경우 증시 활성화 내지 부동산경기 회복 등으로 대기성 자금이 축소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싱가포르와 홍콩의 부동산시장은 거품을 염려할 정도이다.

작금의 소비부진은 점입가경이다. 가계소비지출이 4년 만에 마이너스로 추락하는 등 지갑을 닫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는 것이다. 먹거리가격 등 생활물가부담은 점차 커짐에도 장기간 게걸음 소득에 지친 나머지 소비를 줄인 탓이다. 경기침체로 소비심리가 얼어붙으면서 부자들까지 동참한 인상이다. 올해 1분기 고소득층의 소비지출 감소율은 2003년 관련 통계작성 이래 가장 컸다. 저축과 사회보험, 연금 등에 대한 지출은 약간 증가했다. 불황형 흑자가계가 늘어남을 의미한다.

해외변수에 일희일비하는 천수답경제의 취약성이 여과 없이 노출되는 것 같아 고민이 크다. 정부는 돈가뭄 문제가 하반기에는 개선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나 낙관은 금물이다. 세계경제전망이 불투명해 한치 앞이 예단되지 않는 것이다. 고질적인 한반도 긴장문제도 주목거리이다. 불확실성 해소에 적극 대처해야 할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