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꽁꽁 얼어붙었던 남북관계가 급속하게 해동되고 있다. 일주일 전엔 상상도 못한 일이다. 남북이 사전에 준비라도 한 듯 일의 진행상황이 일사천리다. 남북은 9일 판문점에서 열린 장관급 회담을 위한 실무접촉에서 '오는 12일 서울에서 장관급 회담을 개최'키로 합의했다. 지난 2007년 6월 제21차 장관급 회담이 개최된 이후 6년 만에 남북 장관급 회담이 서울에서 열리는 것이다.

장거리 로켓발사, 3차 핵실험과 개성공단 가동중단, 북한이 쏟아낸 참을 수 없었던 각종 도발적인 언어공세 등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분위기가 일순간에 사라져버린 느낌이다. 너무 급변한 분위기가 오히려 당황스러울 정도다. 실무자회담이건 장관급회담이건 어떤 형식으로든 남북대화를 마다할 이유는 없다. 특히 지금처럼 남북관계가 냉랭한 상황에서 대화의 물꼬는 빨리 열수록 좋다. 하지만 북한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모두 서두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개성공단 재가동 문제가 시간을 다툴 정도로 급박한 건 사실이나 북한의 의도가 정확히 파악되지 않은 상황에서 조심스럽게 대화에 임해야 한다.

남북관계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은 모두 북한의 책임이다. 개성공단문제도 북한이 일방적으로 통신과 통행을 차단했고 근로자를 철수시켰다. 설령 남북장관급회담을 열어 개성공단 재가동에 합의를 본다고해도 이런 일이 재발하지 말라는 보장도 없다. 그만큼 북한은 우리에게 신뢰를 주지 못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더욱이 북핵문제는 여전히 존재하는 골칫덩어리다. 또한 우리가 북한에 따져 물을 것도 산재해 있다.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도발에 대한 사과도 그렇고, 최근 불거진 탈북 청소년 강제 북송문제에 대해 북한이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가 남북회담의 진정성을 가늠하는 척도다. 그냥 아무일 없다는 듯 넘어갈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번 회담이 성공을 거두고 나아가 박근혜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본궤도에 안착하려면 북한의 사과와 추가도발 방지 약속은 반드시 있어야 하고, 또 지켜져야 한다. 회담 성공여부는 전적으로 북한에 달려있다. '앞으로 대화, 뒤로 군사훈련' 같은 이중적 행태를 즉각 중지하고 우리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진정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아울러 우리 정부 역시 성과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북한의 그동안 행태를 따질 건 따지면서 원칙이 훼손되지 않는 회담이 되도록 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