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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국가정보원의 대선·정치 개입 의혹' 사건과 관련,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14일 원 전 원장에게 공직선거법 제85조(지위를 이용한 선거운동 금지) 1항 위반 및 국정원법 제9조(정치관여 금지) 위반 혐의 등을 적용해 불구속 기소했다. 사진은 지난 4월 30일 검찰 소환 조사를 받은 후 서울중앙지검을 나서는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연합뉴스 |
검찰이 14일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에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기소함에 따라 치열한 법정 공방이 벌어질 전망이다.
원 전 원장에게 국가정보원법 외에 선거법 위반죄를 적용할 수 있는지를 놓고 '공안통'으로 알려진 황교안 법무부 장관과 수사팀 간에, 심지어 검찰 내부에서조차 의견이 엇갈린 가운데 기소 직전까지 심각한 논의과정을 거쳤다.
검찰은 공소유지에 자신감을 보인 수사팀의 의견을 존중, 결국 선거법 위반 혐의를 원 전 원장의 공소장에 포함시켰다.
공이 넘어간 법정에서는 원 전 원장의 선거개입 의도를 입증하려는 검찰과 이를 방어하는 변호인단 간에 한치의 양보 없는 법리 싸움이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특정후보 선거운동 의도' 있나 없나 = 쟁점은 원 전 원장이 '종북세력에 대한 선제적 대응'을 지시한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에 선거개입의 의도가 포함됐는지 여부다.
특정 대선 후보를 지칭하거나 댓글 작업 등을 구체적으로 지시한 물증이 많지 않다면 국정원 직원과 주변 인물들의 진술이 법원의 판단에 중요한 근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원 전 원장이 야권 일부를 '종북세력'으로 간주했고 국정원 직원들은 '선제적 대응' 지시를 '특정 후보 선거운동'으로 받아들인 점을 입증하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선거법 전문인 한 변호사는 "원 전 원장이 피상적으로 한 지시의 의도가 직원들의 실제 작업에 얼마나 포함됐고 관련자 진술이 이를 얼마나 구체적으로 입증하느냐가 관건"이라며 "부하 직원들의 진술을 중심으로 공방이 벌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정 후보를 염두에 두지 않았더라도 국가정보기관의 수장이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시를 내린 사실만으로도 선거법을 적용해 처벌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원 전 원장이 사용한 '종북세력'이라는 용어의 범위가 진보진영 일반으로 확장된 만큼 그에 대한 대응 지시 자체가 국정원의 고유 임무를 넘어 선거 결과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한상희 건국대 로스쿨 교수는 "선거는 분위기의 문제인데 법리적인 쟁점이 중심이 될 경우 국가기관이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미가 흐려질 수 있다"며 "진보세력을 곧 종북세력으로 보고 지시했다면 선거개입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선거법 85조1항' 적용 사례는 = 검찰이 이번 사건에서 적용한 선거법 제85조 1항과 관련된 판례는 많지 않다. 법 조항이 다소 모호하다는 지적도 있다. 재판에서 치열한 공방이 예고되는 대목이다.
이 조항은 '공무원은 그 지위를 이용하여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라고 되어 있을 뿐 구체적인 행위를 적시하고 있지는 않다.
'업적을 홍보하는 행위'나 '선거운동의 기획에 참여하는 행위', '지지도를 조사하거나 발표하는 행위' 등을 금지한 다른 선거법 조항들에 비해 추상적이다.
다만 법원 판례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유권해석에 의하면 공무원이 '신분상 또는 직무상의 지휘·감독권을 이용하거나 직무에 관련한 행위에 편승해 선거운동을 함으로써 영향력을 주는 행위'를 하면 이 조항 위반이 된다.
직무상 지휘·명령권, 인사권 등에 근거한 영향력을 이용해 공무원이 부하 또는 관계있는 공무원에 대해 선거에 즈음해 투표를 권유하거나 선거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 등이다.
계약 체결, 보조금·교부금 등을 주는 행위, 사업의 실시·인허가·검사·감사 등의 권한이 있는 공무원이 공공기관이나 유관업체에 선거운동을 하거나 영향력을 주는 경우도 해당된다.
최근 이 조항으로 처벌받은 사례는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가 2010년 10월 서울 은평구을 재·보궐선거 당시 한국관광공사 감사였던 이모씨를 불구속 기소한 사건이다.
이씨는 그 해 7월께 국회의원 재선거를 앞두고 직원 3명을 사무실로 불러 "한나라당 이재오 후보와 친하다. 주변에 이 후보에 관해 말을 잘 해달라"고 부탁한 사실로 벌금 150만원이 확정됐다.
국가안전기획부의 수장이 이 조항으로 기소된 전례도 있다.
권영해 전 안기부장은 1997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 당시 후보가 이사장으로 있던 아태평화재단이 북한으로부터 받은 자금으로 설립됐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도록 지시했다가 기소됐다. 선거법상 후보자 비방 혐의와 공무원의 지위를 이용한 선거운동 혐의, 국정원법상 정치 관여 금지 위반 혐의 등이 적용됐다.
1·2심에서 후보자 비방 및 공무원 지위를 이용한 선거운동은 인정이 됐다. 다만 여러 혐의가 겹치는 경합범으로 간주돼 그 중 가장 무거운 죄를 선택, 최종적으로는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와 허위사실 공표죄, 안기부법 위반죄 등이 적용됐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에도 이 조항이 등장했지만 판단이 남지는 않았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국민들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을 기대한다' 등의 발언이 선거운동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전제로 탄핵소추를 기각했다. 더 나아가 '공무원의 지위를 이용한 선거운동'인지는 판단하지 않았다.
김포시장이 시의 민원실장에게 전문기관에 여론조사를 의뢰하도록 지시한 뒤 그 결과가 유리하게 나오자 지역 신문에 보도되게 했다가 선거법 85조 1항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하급심 판례도 있다.
법원 관계자는 "이 조항은 직위와 관련된 위법을 규정했지만 구체적인 행위를 포함하지 않아 실제 적용한 사례는 드물다"고 말했다.
◇연말께 1심 선고 = 원 전 원장은 연말께 1심 선고를, 상소한다면 내년 상반기 중에는 확정 판결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선거법은 선거사범의 경우 1심 선고를 기소 후 6개월, 2심과 3심은 앞선 선고로부터 각각 3개월 이내에 하도록 규정한다.
공소장을 접수한 서울중앙지법은 이날 오후 컴퓨터 자동배당 방식으로 선거 전담 재판부인 형사합의21부(이범균 부장판사)에 사건을 배당했다.
재판부는 6개월 안에 결론을 내야 하는데다 검찰과 변호인의 팽팽한 공방이 예상돼 매주 1∼2차례 공판을 여는 집중심리 방식을 택할 것으로 보인다.
이 재판부는 함께 기소된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의 재판도 맡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