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특구 개방에 부정적이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혁명적 결단'을 촉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서해 NLL(북방한계선) 문제와 관련, 남북기본합의서를 강조하는 대목도 추가로 나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서해 상에서의 남북공동어로 문제를 먼저 꺼내면서 공동어로 수역으로 NLL 남쪽을 주장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정보원이 24일 기밀해제를 통해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의원들에게제공한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전문에서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내용들이 추가로 공개됐다.
◇'보고' 왜곡 논란…김계관의 북핵·6자회담 보고인 듯
노 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6자회담에 관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는데, 조금전 보고를 그렇게 상세하게 보고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밝혔다.
이는 김계관 당시 외무성 부상이 노 대통령과 김 위원장 앞에서 북핵과 관련한 10·3 공동성명 합의 경과를 보고한 것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김 위원장은 김 부상을 불러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따라서 노 전 대통령이 언급한 '보고'는 맥락상 김 부상이 참석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회담장에서 행한 '보고'를 뜻하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앞서 회의록 전문과 발췌록을 열람한 새누리당 서상기 정보위원장은 대화록에는"대화가 아니고 보고하는 수준이었다고 보면 된다"면서 강력히 비난했었다.
다른 새누리당 정보위원들도 이 부분을 두고 '보고'라고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들이 발췌본만 보고 실제 상황을 잘못 해석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盧 "NLL 바꾼다 어떤다 아니고…지혜 발휘 필요"
노 전 대통령의 NLL 관련 언급은 발췌록에는 "NLL은 바뀌어야 한다", "우리가 제안하고 싶은 것은 안보군사 지도 위에다 평화경제지도를 크게 덮어서 그려보자는 것"이라는 정도로 소개됐다.
그러나 전문에서는 NLL에 대해 "이것을 바꾼다 어쩐다가 아니고. 옛날 기본합의연장 선상에서 앞으로 협의해 나가기로 하고 여기에는 커다란 어떤 공동번영을 위한 그런 바다 이용 계획을 세움으로써 민감한 문제들을 미래지향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지 않겠느냐. 우리가 뭔가 지혜를 발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때 언급된 '기본합의'는 남북기본합의서를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기본합의서에는 '남과 북의 불가침 경계선과 구역은 1953년 7월27일자 군사정전협정에 규정된 군사분계선과 지금까지 쌍방이 관할해온 구역으로 한다"고 규정돼 있다.
노 전 대통령은 그러나 NLL에 대해 "무슨 괴물처럼 함부로 못 건드리는 물건", "국제법적 근거도 없고, 논리적 근거도 분명치 않은 것인데…그러나 현실적으로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등의 언급을 통해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는 동시에 현실적 민감성을 인정했다.
◇김정일, 공동어로구역 NLL 남쪽 주장
김 위원장은 서해 공동어로구역(평화수역)에 대해 자신이 제기할 것을 지시했다면서 해당 수역은 NLL과 NLL 남쪽의 북측이 주장하는 군사경계선을 주장했다.
이는 NLL을 기준으로 등거리·등면적으로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하자는 당시 우리정부의 입장과 배치되는 것이다.
이 때문인지 남북정상회담 후인 2007년 11월 열린 남북국방장관회담에서 공동어로 문제는 남북간 입장차로 합의를 보지 못했다.
김 위원장은 NLL을 둘러싼 남북간 논란에 대해 '생억지 싸움'이라고 표현했다.
◇김정일 특구 반대…盧 "혁명적 결단 하셔야"
김 위원장은 개성공단 외 북한의 추가 특구지정에 대해 "(북한은) 조그만 땅인데 다 뜯어 공단들만 하려고 하면 민족자주경제는 다 파괴되고, 시장경제에 말려들어 가고, 주체공학이 없어지는 정신적 재난이 올 수 있다"며 부정적으로 언급했다.
또 새로운 공단이 남측에는 시장을 넓혀주지만 "실질적으로 우리에게 아직까지는 이해관계가 없다"고도 말했다.
해주를 특구로 지정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해주는 개미도 들어가 배길 수 없을 정도로 군사력이 집중된 곳"이라고 반대 의사를 표했다.
노 전 대통령은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특구를 하시든, 이외의 것을 하시든우리는 바라건대 혁명적 결단을 하셔야 한다"고 요청했다.
남북은 10·4선언에서 해주와 주변지역에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 공동어로구역·평화수역 설정, 경제특구건설·해주항 활용, 민간선박의 해주직항로 통과 등에 합의했었다.
김 위원장은 개성공단 선정 배경에 대해 처음에는 고(故)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에게 신의주와 해주를 1,2순위로 제시했으나 정 전 회장이 반대해 세 번째로 개성을승인했다고 소개했다.
◇김정일 "모레 아침에 가시죠…대통령이 결심 못하시나요"
김 위원장은 정상회담 일정의 하루 연장을 요구했다.
김 위원장은 2007년 10월3일 오후 회담 초반에 "오늘 회의를 내일 하시고…모레아침에 가시는 것이 어떻습니까"라며 기습 제안을 했다.
이어 "대통령께서 결심 못하십니까"라고 말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큰 것은 내가 결심하고 일부 작은 것은 의전, 경호실과 상의해야 한다"고 답했으나 일정 연장 없이 예정대로 4일 귀환했다.
◇2차회담, 1차회담 말미에 결정
2007년 10월3일 오후 열린 2차 회담은 오전 1차 회담에 끝날 즈음 결정됐다.
노 전 대통령은 오전 회담에서 "여기까지 와서 달랑 두 시간 만나 대화하고 가라고 말씀하시면 됩니까. 충분히 잡담을 하더라도 김 위원장하고 시간을 더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우리 국민도 두 번, 세 번, 네 번 만나고 오라고 나한테 짐을 지워 보냈는데 한번 만나고 가면 '노무현 쫓겨왔다' 쓸텐데, 위원장께서 나를 그렇게 할 겁니다"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노 대통령님의 끈질긴 제의에 내가 양보해서 오후 2시30분에 하는것으로…"라면서 수용했고, 배석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에게 "내 회의도 저녁 시간으로 다 돌려라. 오늘 외무성 사람들 몽땅 모여서 방향을 얘기하려 했는데…"라고 말했다.
회담 정례화 문제와 관련해서도 노 전 대통령이 "수시로 보자고만 해주십시오"라고 하자 김 위원장은 "그저 상호 일이 있으면, 호상 방문하는 거고…"라고 언급하다 마지못해 "수시로 협의한다(라고 하자)"고 했다.
답방 문제와 관련, 김 위원장은 "그건 원래 김대중 대통령하고 얘기했는데, 앞으로 가는 경우에는 김영남 위원장이 수반으로서 갈 수 있다. 군사적 문제가 이야기될 때는 내가 갈 수도 있다. 그렇게 이야기가 돼 있다"고 답변했다.
김 위원장이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에서 합의한'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앞으로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하였다'는 내용을 달리 해석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남측도 정서가 있는데, 지금 한나라당 사람들이랑 너무 그렇게 나오는데. 우리가 뭐 하러…호박 쓰고 어디 들어간다는 말이 있는데 지금 그렇게 하려고 하겠습니까"라면서 답방에 부정적 입장을 표시하는 한편 "모든 게 정상적으로 가면 앞으로 못 갈 조건이 없지 않습니까"라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은 "남측은 데모가 너무 자유로운 나라라서 모시기도 그렇게…우리도 좀 어려움이 있다", "오실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정일 "40년간 오침이라는 법 모른다"…盧 "나도 막내"
김 위원장은 오전 회의를 끝내면서 노 전 대통령에게 "오침(낮잠)을 하느냐"고 물으면서 "나는 40년 동안 오침이라는 법을 모른다. 조금 잠들면 그것도 설치고, 많이 자면 골 아프고…"라고 말했다.
배석했던 이재정 당시 통일부장관은 "대단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라고 호응했다.
김 위원장이 정몽헌 전 회장이 해주항 개방 등을 요구한 사실을 전하면서 "그분이 막내가 됐는지 그 집안에서 떼를 많이 써요"라고 하자 노 전 대통령도 "나도 막내"라고 맞장구를 쳤다.
노 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군부에 시각도 드러냈다. 노 전 대통령은 "남쪽에서도 군부가 뭘 자꾸 안 하려고 한다. 이번에 군부가 개편돼 사고방식이 달라지고 평화협력에 대한 전향적 태도를 갖고 있습니다만 군부라는 것은 항상…북측에서도 듣기로는 마찬가지 아닙니까?"라고 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완고한 2급 보수라고 할까요!"라며 웃었다.
/연합뉴스
회담전문에 드러난 막전막후…'보고' 왜곡 시비일듯
정상회담 정례화…盧 "수시로", 金 "간다고 밝힐 필요없어"
서울답방…金 "김영남, 수반으로 갈 수 있다" 의외 답변
입력 2013-06-25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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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25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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