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세한도

눈도 내리지 않은 마른 겨울에 소나무 고목과 잣나무, 그 아래 허름한 집 한 채. 종이에 먹으로 간략하게 그렸다. 등장하는 것은 나무와 집뿐이다. 장식이라고는 없다. 앙상한 나무와 울타리도 없는 빈한한 집. 황량하리만큼 텅 빈 느낌이다. 사물에 대한 동양적 단순화의 극치를 보여준다. 19세기 조선과 중국,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 중 하나로 꼽힌다.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작품이다.

#아비뇽의 아가씨들

여인 다섯이 등장한다. 넷은 섰고, 하나는 등을 돌리고 앉았는데 뒤를 돌아본다. 옷을 벗은 누드화이지만 일반적 여인의 모습은 아니다. 얼굴이며 몸매가 단순한 터치와 굵은 선, 단조로운 색감으로 인해 우락부락하게 보일 정도다. 가면을 쓴 듯 험상궂게도 느껴진다.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전혀 사실적이지 않다. 피카소(1881~1973)가 1907년에 완성한 20세기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피카소의 드러나지 않았던 작품세계와 그의 인생을 보여주는 전시회가 지난 주말 인천에서 시작됐다. 난데없이 '세한도'와 '아비뇽의 아가씨들'을 비교해 얘기하는 이유는 바로 이 전시회의 색다른 관전 포인트를 설명하려는 데 있다.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카소가 모방을 창조로 연결하는 교류와 소통의 예술을 추구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 점은 이미 피카소보다 100년이나 먼저 조선 땅에서 태어난 추사 김정희가 잘 보여줬다. 추사는 글씨와 그림, 문학에서 천재적 예술성을 구현한 동아시아의 독보적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세한도'와 '아비뇽의 아가씨들'은 예술세계에서 단순함이 복잡함보다 더 많은 것을 보여준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그러함은 동양과 서양이 다르지 않음도 단적으로 드러낸다. 그 단순함은 작가의 열려 있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점도 추사와 피카소의 인생은 말한다. 추사는 중국의 예술인들과 교류하면서 스스로의 작품세계를 가다듬었다. 추사는 일본에서도 잘 알려졌다. 최근에 개관한 경기도 과천의 추사 박물관은 유명한 추사 연구자인 일본의 후지츠카 치카시 박사가 수집한 방대한 추사 관련 자료를 그의 아들이 2006년에 기증한 것이 토대가 됐다. 국제교류의 중요성을 실감케 하는 사례다. 피카소 역시 국가와 장르를 뛰어넘었다. '아비뇽의 아가씨들'은 아프리카 부족의 조각작품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는 어떠한 예술적 경계에도 매달리지 않았다. 말 그대로 자유인이었다.

피카소 인천 전시회 개막식에 참석한 스페인 당국자들은 인천을 비롯한 한국과 스페인의 문화교류가 본격화한 것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인천에 스페인 영사관 설립도 추진하겠다고 했다. 인천 출신 화가들이 스페인에서 전시회를 갖기를 희망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들은 피카소의 고향 스페인 말라가시 피카소재단 소장품들이다. 피카소를 상징하는 '아비뇽의 아가씨들'과 같은 유명 유화작품은 피카소재단이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번 전시회에는 빠질 수밖에 없었다. 피카소 전시회에서 유화작품을 보기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번 전시회는 그보다 더 큰 의미를 준다. 도시간 교류전으로서 판화와 도자기, 드로잉 등 피카소의 잘 알려지지 않았던 작품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고, 특히 피카소의 유족이 재단 측에 기증한 '피카소의 인생'을 경험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기회이다.

예술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는지는 피카소가 보여줬다. 그는 비둘기를 평화의 상징이 되게 했으며, 독재와 전쟁에 반대하는 작품활동을 벌였다. 한국전쟁 기간에 그린 '한국에서의 학살'이란 작품도 유명하다. 추사 김정희가 보여준 예술세계 또한 저항과 지조의 그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피카소 작품전은 우리의 화가들이 스페인의 말라가에서 전시회를 가질 수 있는 길을 텄다는 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또한 이번 피카소 작품전을 본 우리 아이들이 세계적 예술가로 떠오를 수도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경계를 지우지 않고 열려 있는 마음으로 이번 전시회를 바라보면 그만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