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인터넷 사이트에서 보수, 진보 논쟁을 벌이다가 상대방을 살해한 피의자가 범행 후 5시간 만에 해당 사이트에 올린 패러디물. 상의를 걷어올린 사람의 얼굴에 피해자의 아이디를 넣었다. /연합뉴스

인터넷상에서 정치, 사회 문제와 관련해 누리꾼들이 벌인 보수, 진보 논쟁이 살인사건으로 비화한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부산 해운대경찰서는 17일 살인 혐의로 백모(30)씨를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

백씨는 지난 10일 오후 9시 10분께 부산 해운대구 반여동 모 아파트 김모(30·여)씨의 집 앞에서 흉기로 김씨의 배 등을 9군데나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백씨와 김씨는 모 인터넷 사이트의 정치, 사회 갤러리에 활발하게 글을 올리는 이들이고 특히 김씨는 논리정연한 글을 많이 올려 회원 사이에서 '여신'으로 불렸다.

2010년부터 이 사이트에서 활동해온 이들은 진보적인 성향의 글을 함께 올리며 모 채팅 사이트 아이디를 알려줄 정도로 가깝게 지내다가 지난해 초·중반 김씨가 보수성향으로 돌아서면서 틀어졌다.

백씨는 주로 고(故)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을 지지하는 글을 올렸고 김씨는 이를 반박하는 글로 첨예하게 맞섰다.

특히 백씨가 김씨에 대한 이른바 '신상 털기'를 하면서 성적인 모욕감까지 주자 김씨가 경찰에 고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놨고 백씨는 지난해 9월 사과의 글이 적힌 대자보를 사이트에 게시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백씨의 활동이 급격하게 위축됐지만 서로 욕설과 비방전을 펼치면서 감정이 격화돼 백씨는 3개월 전부터 범행을 계획했다.

이에 따라 광주에 사는 백씨는 채팅 사이트를 통해 김씨의 주거지를 알아낸 뒤 흉기 2개를 구입해 지난 5일 부산으로 왔다.

백씨는 5일간 찜질방과 모텔에 머물면서 김씨의 집 근처를 3∼4차례 답사하고 채팅 사이트를 통해 동선을 파악한 뒤 범행 당일 집을 나서는 김씨를 무참히 살해했다.

백씨는 또 범행 후 5시간 만인 지난 11일 오전 2시께 김씨를 살해했다는 것을 암시하는 패러디물을 인터넷 사이트에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이 패러디물과 자신이 올렸던 글을 모두 삭제했고, 김씨가 올렸던 글도 대부분 삭제돼 경찰이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

백씨는 범행 후 모텔에 은신하고 있었으나 도주로에 있는 CCTV를 통해 용의자의 인상착의를 파악한 경찰에게 6일 만인 지난 16일 오후 9시 45분께 붙잡혔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피의자는 일반적인 범죄자와 달리 범행에 사용한 흉기와 옷 등을 그대로 갖고 있었고 죄의식을 거의 느끼지 않는 듯 당당하게 범행 과정을 설명하는 등 사이코패스를 연상하게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