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22일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 국가기록원에 없다"는 결론을 내면서 정국은 전대미문의 '사초(史草) 실종' 논란의 늪으로 빠져들게 됐다.

당장은 정상회담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자 대통령기록물의 국가기록원 이관을 책임졌던 민주당 문재인 의원과 친노(친노무현) 진영이 수세에 몰리는 양상이지만, 이번 사건이 굴러가면서 책임의 불똥이 어디로 튈지 단언키 어렵다.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안개정국'으로 진입한 셈이다.

여야는 '사초 실종'이라는 결론을 놓고 이제부터 원인 규명을 시작해야 한다.

새누리당의 주장대로 '노무현 정부'가 애초 대화록을 국가기록원으로 이관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민주당의 주장대로 대화록이 국가기록원으로 이관된 후 '이명박 정부'에서 훼손된 것인지가 앞으로 파고들 문제다. '국가기록원에 없다'는 결론이 내려진 만큼 '있는데 못찾고 있다'는 명제는 현 단계에서는 소거됐다.

결국 '대화록 파기' 논란으로 초점이 이동하면서 책임소재, 검찰 수사 또는 특별검사 개입 여부 등을 놓고 여야 대치가 불가피해 보인다.

나아가 검찰 수사 등과 맞물려 책임공방이 장기화할 경우 정상적인 국회 운영에 부담을 주면서 9월 정기국회에까지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관측도 나온다.

◇책임론 향배…어느 정권이 타격입나 = 어느 쪽이든 '사초 파기'의 책임을 떠안는 진영은 치명상을 입을게 분명하다.

새누리당은 '노무현 정부'가 대화록을 폐기했다는 확신 하에 곧바로 검찰 수사를 통해 경위를 파악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민주당은 지난 5년간 대통령 기록물을 관리한 '이명박 정부'에 의한 훼손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만약 노무현정부가 대화록을 파기한 것으로 드러나면 민주당은 상당한 정치적 타격을 보게 된다.

새누리당 홍문종 사무총장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지난주 여론동향을 보면 이명박 정부가 대화록을 삭제했다는 민주당의 주장은 어불성설이라는 의견이 많다"면서 "노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의원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여론이 있다"고 친노(친노무현) 세력을 정조준했다.

거꾸로 '이명박 정부'가 파기의 주체로 드러난다면 새누리당 친이(친이명박)뿐만 아니라 친박(친박근혜)계도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는 "지난 5년 동안 국가기록원에서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인지 의심을 지울 수 없다"며 '이명박 정부' 개입 가능성을 제기했다.

◇검찰로 공 넘어가며 또다른 파장 예고 = 현재로서는 대화록이 왜 없는지를 가리는 주체는 검찰이 될 가능성이 크다.

새누리당은 가능한 한 신속하게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다는 방침으로 알려졌다.

핵심 당직자는 "이제는 검찰 수사를 통해 대화록이 애초 국가기록원에 이관되지 않았다는 의혹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맞서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의 대화록 훼손 가능성을 의심하며 이명박 전 대통령과 국가기록원장에 대한 고소·고발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친노계 일각에서는 공정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검찰 수사보다는 특별검사를 임명해 의혹을 풀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그러나 어쨌든 검찰이 개입하게 되면 수사는 정치권에 또다른 파장을 불러올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일단 전임 정부 인사들에 대한 대규모 소환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가 현실화하는 단계에서는 법리적 해석도 논란거리다.

대화록 파기의 책임 소재는 어느 쪽으로 결론나든 정치적 후폭풍이 크겠지만, 형사처벌 문제는 다른 사안이기 때문이다.

당장은 대화록의 대통령기록물 지정 여부가 관건이다.

검찰 출신인 한 인사는 "어느 정권에서 파기했느냐의 정치적 논란과 형사 처벌 문제는 별개"라며 "대통령기록물 지정 후 파기됐다면 현행 대통령기록물법에 따라 형사처벌이 가능하겠지만, 아예 대통령기록물에 지정되지도 않았다면 형사처벌 사안은 아닐 것"이라고 해석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