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마의사를 직간접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표현 방식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일단 공식 발표가 가장 확실하다. 내가 어느 자리의 후보로 출마하겠다고 밝히는 것이다. 인천의 경우 새누리당과 민주당에서 시장 출마를 공식화한 사람이 여럿 있다. 최근엔 몇몇 지역 국회의원들이 기자간담회를 갖고 자신의 향후 거취에 대해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어떤 국회의원은 언론보도에서 예상 후보자로 포함되지 않은데 대해 불평을 하기도 하고, 또 다른 의원은 '지금 거론되고 있는 후보보다 내가 더 경쟁력이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하며 자연스레 시장 후보로 나설 뜻을 비치기도 한다. 어느 전임 시장은 내년 선거에 나설 뜻을 공식화하고 준비에 들어갔다. 이런 저런 방식으로 몇몇 후보군들은 간담회 형식을 빌려 언론에 '후보등록'을 알린 셈이다.
마라톤에는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하는 선수가 있다. 우승 후보의 기록을 단축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투입된 선수를 말한다. 오로지 남의 1등을 위해 달려야하는 것이다. 다른 선수들의 경기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전략 선수인 만큼 각 대회마다 없어선 안될 존재다. 이들은 42.195㎞ 구간에서 우승 후보의 템포에 맞춰 뛰다가 30㎞ 지점에서 경기를 포기한다. 지난해 상영된 영화 '페이스메이커'는 뛰어보지 못하고 잃어버린 12.195㎞를 뛰어 보고 싶은 주인공을 그렸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황영조 선수와 2011년 대구 육상 세계선수권 대회 우승자인 아벨 칼루이도 페이스메이커 출신이다. 남을 위해 뛰다가 어느 순간 자신이 최고의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이다. 물론 그 자리를 차지하기까지 남모를 땀과 노력이 뒷받침됐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흔히 선거를 마라톤에 비유한다. 오랜 시간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결과를 얻어낸다는 점에서 그렇다.
마라톤의 페이스메이커는 1등이 될 누군가를 위해 최선을 다해 달린다. 비록 완주는 못하더라도 분명한 목적이 있다. 다른 사람을 위해 달린다는 것이다. 선거때만 되면 자치단체장이 되기 위해 중도사퇴하는 국회의원,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중도사퇴하는 자치단체장이 나온다. 유권자의 선택을 저버린 행위라는 비난도 이들의 결정을 뒤엎지는 못한다. 선거전에 뛰어드는 것은 자기 결정이다. 유권자의 선택만 받으면 된다는 단순한 논리에서 출발할 수도 있다. 내년 선거를 향한 대장정은 이미 시작됐다. 42.195㎞를 내달리는 마라톤보다 더 험난한 여정이다. 유권자의 선택을 받는 이가 누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유권자는 누군가를 위해 열심히 뛰는, 하지만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42.195㎞를 완주하는 페이스메이커를 보고 싶어한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경기장에서 태극기가 선명한 가슴을 자랑스럽게 내밀고 두 손을 흔들며 자랑스럽게 뛰어들어 오던 황영조처럼.
/이영재 인천본사 사회문체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