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가격 급등세에 제동이 걸리지 않고 있다.

과거에는 방학이나 봄가을 이사철 등 성수기에만 전세가가 급등했지만 최근에는 비수기에도 몇 달 만에 수천만 원 오른 집이 흔하다.

소득은 그대로인데 전세가는 치솟으니 세입자의 시름은 나날이 깊어진다.



◇전세가 '천정부지'…매매가 상승률의 3배

회사원 김모(40)씨는 지난해 10월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 전용면적 112㎡(34평) 규모의 아파트 전세를 3억5천만원에 구했다. 10개월이 지난 현재 이 집의 전세가격은 이보다 1억1천만원 오른 4억6천만원에 달한다.

재계약 시점인 내년 10월까지 전세가가 얼마나 더 오를지 알 수 없고 이미 1억5천만원의 전세대출을 받아 추가 대출로 전세를 감당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김씨는 "추가 대출로는 오른 전세를 감당하기 어려워 재계약을 하지 못하고 이사 가는 것도 고민해야 할 판"이라고 걱정했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올해 7월 현재 전국 주택 기준 전세가격은 2008년 말보다 30.98% 뛰었다. 같은 기간 매매가격 상승률(10.21%)의 3배에 이른다.

전세가 상승률은 2010년 7%, 2011년 12%, 지난해 3.5% 수준이었다.

올해 상반기에만 전국의 아파트 전세가격 상승률은 2.75%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현재 전국 주택의 전세가격 시가총액은 약 1천30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약 2천200조원 규모인 주택 매매가격 시가총액의 절반을 넘어섰다.

이처럼 전세가가 치솟으니 전세를 구할 엄두를 못 내는 사람이 많아진 것은 물론, 어렵게 전세를 구해도 매년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전세 보증금을 대출로 감당하느라 세입자의 경제적 고통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돈 있는 사람도 전세 선호…공급이 수요 못 쫓아

전세가가 이처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것은 전세물건이 부족한 상황에서 수요는 증가하기 때문이다.

아파트를 구입할 여유가 충분한 사람도 나중에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 전세를 찾다 보니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부동산에 대한 정책적 불확실성이 주택 시장을 굉장히 왜곡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안정적이지 못하다 보니 주택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가 낮아져 전세 수요만 늘고 있다는 것이다.

김수현 세종대 도시부동산대학원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가 나아지지 않고 불확실성이 커져 사람들이 선뜻 집을 사지 않는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전세가율)이 60%를 넘으면 전세 수요가 매매 수요로 전환되면서 집값이 올랐다.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6월 현재 전국의 아파트 전세가율은 63%, 서울은 57%를 기록했지만 지금까지 전세 선호 흐름은 변하지 않았다.

집값 상승 기대감이 낮은 상황에서 추가 대출을 받고 각종 세금과 거래비용을 들여 집을 사느니 오른 전세 보증금만 부담하는 게 낫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은행들이 앞다퉈 내놓은 전세대출 상품도 전세가격 상승을 부채질했다. 저금리 기조도 전세자금 대출 수요를 자극하고 있다.



◇정부도 총력 대응…정치권선 '부동산법 빅딜' 제안도

'전세 대란' 우려가 확대되자 정부도 발 벗고 나섰다.

'목돈 안 드는 전세' 대출상품이 4%대의 금리로 이달 말 2년간 한시적으로 출시된다.

이는 대출 이자를 세입자가 내는 조건으로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에 해당하는 돈을 은행에서 빌려오는 상품이다.

이 상품은 집주인에 대한 유인책도 제공한다. 집주인에게 세입자의 이자 납부액을 300만원 한도에서 40%까지 종합소득세에서 공제해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는 기존의 매입·전세임대주택을 하반기에 집중적으로 공급하고 다가구 매입임대 지원단가를 높여 매입 대상주택을 늘리는 방안을 추진한다.

금융위원회는 전세자금 대출에 대한 보증 한도를 현재의 1억5천만원에서 2억원 이상으로 올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정부와 여당은 주택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폐지 등 주택거래 활성화 법안을 놓고 조만간 머리를 맞댈 것으로 예상된다.

나성린 새누리당 정책위원회 부의장은 최근 부동산시장 활성화를 위한 핵심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민주당에 '부동산법 빅딜'을 제안했다.

새누리당이 부동산 시장 활성화의 걸림돌로 보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분양가 상한제, 기업 양도세 특별가산세 등을 폐지하고 그 대신 임차인 권리를 보호하는 방향의 임대차보호법 개정, 뉴타운 사업지에 대한 세제혜택법안 등 민주당의 요구를 수용하겠다는 것이다.



◇전세대란 막을 방법은

전문가들은 거래 활성화를 위한 지원대책, 주택 수요·공급 조절, 금융권 전세대출 차별 적용 등의 대책을 제시한다.

오피스텔 같은 1∼2인 가구 중심의 주택을 공급하기보다 3∼4인 가구가 살 만한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늘리는 것도 거론된다.

전세 계약 기간을 현행 2년보다 늘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임주재 전 주택금융공사 사장은 "현 주택시장의 문제는 매수 여력이 있는 사람도 집을 사지 않는 점"이라며 "전세대출은 여유가 있는 사람에게는 하지 말고 소득 수준이 낮은 '렌트푸어'(주택임대 비용으로 고통받는 사람)를 대상으로 제한적으로 해야 한다"고 밝혔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부동산 거래 활성화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며 "현재는 각종 혜택이 신분양에만 집중되고 기존 주택 거래에는 없는데, 신구(新舊) 모든 주택을 공급주택으로 여기도록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제안했다.

일각에서는 전월세 상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반면 송인호 KDI 연구위원은 "전월세 상한제로 가격을 통제하면 수요만 폭발적으로 늘어난다"면서 "미국 등에서 시작돼 이미 실패한 정책"이라고 반대 견해를 피력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