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일 오후 11시께 인천시 남동구 한 대리기사 대기소에 모여 앉은 대리기사들이 오지않는 '콜'을 기다리고 있다. /조재현기자
어렵게 콜 잡아 뛰어도 중개료 20%·보험료 내면 '탈탈'
막판까지 몰린 사람 많아… 자살 잦고 폭행 범죄 노출
기사협회 "업체 난립 문제 열악한 현실 반영한 법 필요"


27일 밤 11시께 인천시 남동구 구월동 로데오 광장. 벤치에 앉아있는 대리운전기사들이 '콜'을 잡기 위해 휴대전화 화면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이들의 스마트폰에서는 '띵동' 하는 알림음이 울렸다.

1~2초 사이에 콜을 잡는 사람이 판가름났다. 콜을 잡기 위해 스마트폰을 여러 대 들고 다니는 대리기사도 있었다.

3년차 대리운전기사 김모(45)씨는 "오늘 5번 콜을 잡았다"며 "하지만 모두 단거리다. 우리 사이에선 단거리만 뛰는 사람을 '찌질이'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그래도 김씨는 많은 콜을 잡은 편이었다. 주변 대리운전기사 4명이 이날 밤 11시까지 번 수입은 평균 3만원 수준이었다.

대리운전기사는 수입 가운데 보통 20%를 중개료 명목으로 대리업체에 돌려줘야 한다.

추가로 한 달에 평균 7만원 정도의 보험료와 벌금 납부 등에 대비하기 위한 비용 10만원도 업체에 내야 한다.

이들은 자신들이 보험료 등으로 업체에 낸 돈이 제대로 쓰이는지는 모른다.

개인택시를 하다가 최근 대리운전을 시작했다는 이경세(56)씨는 "보험료나 벌금 등을 내지만 실제로 본래 목적대로 사용되는지는 알 수가 없다.

보험 가입 증서도 못 받아봤다"며 "막판까지 몰린 사람이 대리운전을 하는데 그마저도 업체가 요구하는 대로 다 들어줄 수밖에 없다. 남는 돈으로 생활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적은 수입 탓에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대리운전기사들도 많다.

지난달 18일 오전 10시께 연수구 옥련동 원룸에서 대리운전기사 A(42)씨가 목을 맨 채 숨졌다. 경찰 조사결과 A씨는 몇 달째 월세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대리운전기사들은 폭행 등 갖은 범죄에도 노출돼 있다.

인천남동경찰서는 지난 26일 자신의 집까지 곧장 오지 않았다며 대리운전기사(47)를 여러 차례 때린 혐의로 B(48)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19일에도 다른 경로로 운전했다는 이유로 대리운전기사(50)의 얼굴을 머리로 들이받아 다치게 한 혐의로 C(35)씨가 불구속 입건됐다.

대리운전기사 박모(47)씨는 "얼마 전 새벽시간대 인천 남동구의 으슥한 동네에서 걸어나오다 외국인들에게 맞고 가진 돈을 다 뺏긴 기사도 있었다"며 "술 취한 손님을 상대하는 데다 휴대전화만 보고 다니니 범죄의 표적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리운전기사들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제도 도입은 먼 일이다.

국회에는 대리운전 관련 3개 법안이 제출돼 있지만, 대리운전기사의 열악한 현실보다는 소비자 입장에 맞춘 조항이 더 많다.

전국대리기사협회 김종용 회장(권한대행)은 "대리기사는 막판까지 오신 분들이 대부분이다. 수입은 적지만 업체가 난립해 있다 보니 대리기사가 피해를 보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며 "법제화를 통해 체계적인 업체 관리가 이루어져야 한다. 다만 법 제정 과정에서 대리운전기사들의 입장을 생각한 내용이 많이 반영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홍현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