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의장 교체와 함께 위원들의 3분의 2 이상이 일시에 '물갈이'되는 유례없는 격변을 앞두고 있어 지도부 공백에 따른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이는 신속한 양적완화 중단을 선호하는 로런스(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이 차기 연준 의장으로 거의 낙점됐다는 관측과 맞물려 미국 금리를 밀어올리는 등 시장의 불안감을 한껏 증폭시키고 있다.



◇ FOMC 12명 중 '비둘기파' 8∼9명 교체

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벤 버냉키 의장이 물러나는 내년 초까지 연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위원 12명 중 8∼9명이 일제히 교체된다.

이 같은 무더기 교체는 연준 역사상 유례없는 일로서, 이는 매년 교대되는 지역 연방준비은행 총재 4명에 더해 연준 이사 7명 중 4∼5명이 올해 말까지 물러나기 때문이다.

새라 블룸 래스킨 이사는 지난달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의해 재무부장관으로 지명돼 상원 인준을 거치는 대로 재무부로 옮길 예정이다.

엘리자베스 듀크 이사도 지난달 말 자진 사임했으며, 제롬 파월 이사도 임기가 끝나는 내년 1월 물러날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차기 의장 후보인 재닛 옐런 부의장도 경쟁자 서머스가 의장으로 지명되면 부의장 임기가 끝나는 내년 10월 이전에 물러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미국 언론의 관측이다.

UBS은행의 드루 매터스는 "옐런이 의장직에서 제외되면 이사로 남을 이유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고 미국 온라인 경제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전했다.

따라서 서머스가 선임되면 현 연준 이사 중 제러미 스타인, 대니얼 타룰로 등 2명만 남아 윌리엄 더들리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와 함께 현 FOMC 위원 중 유임하는 단 3명이 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로 인한 FOMC 성향의 변화로, 물러날 연준 이사 4∼5명은 전원 통화 완화를 선호하는 '비둘기파' 성향이다.

올해 말 나가는 지역 연방준비은행 총재 4명 중에서도 비둘기파가 찰스 에번스(시카고)·에릭 로젠그린(보스턴) 등 2명이며, 긴축을 선호하는 '매파'는 에스더 조지(캔자스시티) 1명, 중도파는 제임스 불러드(세인트루이스) 1명이다.

반면 내년 새로 들어오는 4명은 매파가 리처드 피셔(댈러스), 찰스 플로서(필라델피아), 샌드라 피아날토(클리블랜드) 등 3명이며, 비둘기파는 나라야나 코철라코타(미니애폴리스) 1명에 불과하다.

현재 FOMC의 성향별 구성은 비둘기파 9명(버냉키·옐런·래스킨·듀크·파월·타룰로·더들리·에번스·로젠그린), 매파 2명(스타인·조지), 중도파 1명(불러드)이다.

그러나 내년 FOMC는 차기 의장과 공석인 연준 이사 4명을 제외한 7명 중 매파가 4명(스타인·피셔·플로서·피아날토)으로 비둘기파 3명(타룰로·더들리·코철라코타)보다 많아진다.

이사 4명의 인선 결과에 따라 현재 비둘기파가 압도적 다수인 구도가 매파 우위로 뒤집힐 가능성이 충분하다.

이 같은 연준의 '대격변'이 하필이면 양적완화라는 전례 없는 정책을 축소·중단하려는 결정적인 시기와 맞물리면서 거대한 불확실성을 시장에 드리우고 있다.

보리스 슐로스버그 BK 자산관리 상무이사는 경제방송 CNBC에서 "문제는 연준이 교체기라는 점"이라며 "가장 강력한 지도력이 필요한 시기에 지도력이 사라지는 것. 이는 오바마 행정부에 정말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학균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최근 "12명이 동등한 투표권을 갖는 FOMC의 구조상 과거에는 의장이 바뀌어도 물리적으로는 한 표의 변화에 불과했다"며 "이번에는 인선에 따라 통화정책 기조가 바뀔 가능성도 있어 차기 의장 인선이 과거보다 훨씬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됐다"고 분석했다.



◇ "서머스, 양적완화 조속 중단" 전망에 시장 요동

따라서 시장의 초점은 서머스의 성향, 특히 현 연준의 핵심 정책인 양적완화에 대한 그의 입장으로 쏠린다.

서머스는 대체로 비둘기파 성향으로 분류되나, 양적완화에는 비판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지난 4월 행한 한 연설에서 "내 생각에는 양적완화가 대다수 사람의 생각만큼 실물 경제에 효과적이지 않다"며 양적완화는 그리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정책이라고 밝힌 바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서머스의 지난 수년간 발언들을 애널리스트들이 분석한 결과 그가 버냉키나 옐런보다는 매파적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결론 내리고 있다.

또한 오바마 대통령이 그를 지명할 것이라는 예상이 날로 늘어나면서 서머스가 양적완화를 신속히 중단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시장에 퍼지고 있다.

단적으로 그가 유력 후보라는 첫 보도가 나온 지난 7월 말 이후 미국 10년물 국채 수익률(금리)은 금리 상승 전망을 업고 0.4%포인트가량 상승, 현재는 2.9%에 육박하고 있다.

홍콩 투자자문사 뷰 프롬 더 피크의 폴 크레이크 창업자는 CNBC에서 이제 양적완화 축소 시기가 아니라 차기 의장이 누구냐가 시장에 중요하며 "서머스는 양적완화의 지지자가 아니며,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하면 양적완화 축소를 신속히 행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서머스 지명시 통화 긴축과 금리 인상으로 경제 성장률 하락, 일자리 창출을 초래할 것이라는 다소 앞선 시나리오까지 내놓고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BNP파리바의 줄리아 코로나도 북미담당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보고서에서 서머스가 지명되면 미국 금리가 옐런 지명시보다 0.5%포인트(50bp) 이상 오를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이러한 '서머스 효과'의 결과로 미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향후 2년간 0.5%포인트∼0.75%포인트가량 하락, 35만∼50만 개의 일자리 창출이 억제될 가능성이 있다고 코로나도는 내다봤다.

이미 양적완화 축소 전망으로 상당한 타격을 입은 신흥국들의 앞날은 더욱 험난하다.

티잠 이드리스 맥쿼리은행 채권·통화 연구책임자는 CNBC에서 "서머스의 선임은 (연준의) 정책적 단절로 인식될 것"이라며 "따라서 신흥국에는 위험성 가산금리를 더해야 하며, 신흥국은 서머스 선임 논의에 약세를 보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학균 연구원은 "지금은 미국의 통화정책 변화 가능성에 시장이 민감히 반응할 수 있는 시기"라며 "사후적으로 시장의 과민 반응으로 치부될 수도 있을지언정 향후 2~3개월간 시장의 변동성이 증폭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과 신흥국 증시 모두 조정을 받을 수 있고 일부 취약한 신흥국은 약세를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며 "한국은 이들 신흥국보다 안정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어 상대적으로 나을 수 있지만, 신흥국과 선진국 주가가 다 같이 조정을 받는 국면에서 한국만 오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형중·박정은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강한 달러화'의 지지자인 서머스가 지명되면 양적완화를 빨리 축소하고 달러화 강세를 유도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이들은 따라서 "세계 유동성이 미국으로 현저히 유입되고 미국 경기가 빨리 살아나는 가운데 선진국과 신흥국간 차별화가 강해질 위험성이 있다"며 다만 "중장기적으로는 미국 경기 회복과 달러화 강세로 대미 수출 확대 등 신흥국 경기가 개선될 여지도 있다"고 내다봤다. /연합뉴스



 비둘기파  중간파  매파
현재



 9명
(버냉키·옐런·래스
킨·듀크·파월·타룰
로·더들리·에번스·로
젠그린)
 1명
(불러드)


 2명
(스타인·조지)


서머스
지명시
내년
 3명
(타룰로·더들리·코철
라코타)
 없음

 4명
(스타인·피셔·플로
서·피아날토)
옐런
지명시
내년
 4명
(옐런·타룰로·더들
리·코철라코타)
 없음

 4명
(스타인·피셔·플로
서·피아날토)


※공석인 연준 이사 4명과 서머스는 제외

(자료=KDB대우증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