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오후 국회 사랑재에서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3자 회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컸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황우여, 민주당 김한길 대표가 추석을 앞두고 어렵사리 16일 국회에서 3자회담을 시작할 때만 해도 지난 50일 가까이 여름 정국을 뜨겁게 달궈졌던 열기가 식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많았다.

정국 파행의 직접적 불씨가 된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의혹 및 국정원 개혁 문제만 해도 여야 간에 어느 정도 사전 조율이 있었으니까 만나기로 한 것 아니냐는 기대감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정작 뚜껑을 열고 보니 말 그대로 희망 섞인 기대에 지나지 않았다. 민주당 입장에선 '긴 기다림, 짧은 만남, 빈손 회담'이었다.

주로 박 대통령과 김 대표 간에 '담판' 형식으로 이뤄진 회담은 서로 간에 높은 불신의 벽만 확인한 채 막을 내렸다.

박 대통령은 국정원 사태에 대한 사과와 국정원의 전면적 개혁, 채동욱 검찰총장의 사의 표명을 둘러싼 관련자 문책 요구 등 김 대표가 꺼낸 7개항 요구 중 어느 것 하나 수용하지 않았다.

김 대표는 예상보다 30분가량 길어진 회담 내용을 소속 의원들에게 보고한 직후 "민주주의의 밤은 더 길어질 것 같다"면서 다시 '천막당사행'(行)을 선언했다.

정기국회 파행이 추석을 넘어 훨씬 장기화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 박근혜 대표가 16일 오후 국회 사랑재에서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왼쪽),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3자 회담에 앞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일 문을 연 9월 정기국회는 이미 아무런 활동 없이 벌써 2주를 흘려보냈다.

아직 국회는 내년도 예산안은커녕 지난해 정부 예산의 결산 심의조차 착수하지 못한 상태다.

국가 재정의 골간이 될 세제 개편안, 부동산 시장 활성화 및 전·월세난 해소를 위한 '8·28 부동산 대책' 관련 법률안, 기업의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한 경제살리기 법안 등을 조속히 통과시키려던 여당의 계획도 차질이 불가피해 졌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포함한 이른바 '경제민주화' 법안도 대기상태가 길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국회 선진화법이 통과된 이후 원내 과반인 새누리당이라도 야권의 도움 없이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는 현실을 감안할 때 당분간 민생법안 처리는 어려울 전망이다.

이 같은 경색 국면의 마지막 출구로 여겨진 박 대통령과 여야 대표의 3자회담이 무위로 돌아감에 따라 앞으로 언제까지 파행이 이어질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형국이다.

특히 오는 10월 재·보선과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야 모두 타협과 양보보다는 기싸움을 벌일 개연성이 크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현재의 여야 대치 정국이 연말까지 계속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이에 따라 정치적 포용력을 발휘하지 못한 여권은 여권대로, 민의의 전당인 국회 대신 거리에 머물고 있는 야당은 야당대로 "민생을 외면한다"는 국민적 비판을 피할 길이 없게 됐다.

그러나 아직 정기국회가 초반인 만큼 여야가 '따가운' 추석 민심과 '차가운' 경기를 확인하고 나면 결국 다시 협상 테이블로 돌아오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없지 않다. /연합뉴스